"현대(자본주의)세계는 젊은이들에게 시장에서 소비자가 되라는 것 외에 어떤 가치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미래가 흥미로운가. (젊은이들은)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프랑스 좌파철학자 알랭 바디우(76)는 27일 서울 강남구 문화시설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첫 방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바디우는 대학 시절부터 알튀세르, 마오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주체' '보편성' 등을 강조해 이 이론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다든지 수학 이론서나 소설, 희곡 집필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으로 주목 받아왔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쥐인간'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는 책까지 낼 정도로 현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 방한은 지젝을 비롯해 중국의 왕후이(칭화대) 미국의 로잘린드 모리스(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참여해 이날부터 10월 1일까지 다섯 차례로 나눠 열리는 국제학술회의 '무위의 공동체' 참석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진리의 정치학'으로 부르는 그를 기자회견장에서 만났다.
-의회민주주의의는 가짜 민주주의라고 말해왔다.
"현대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공히 누려야 할 건강, 교육을 사유재산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런 (공적인)생산 수단을 극히 소수의 사람이 지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래서 현재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가짜 민주주의이며 과두정치에 불과하다. 자본과 금융 권력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대로 모든 인민에 권리가 주어진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작가 베케트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반드시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그는 라는 책도 냈다). 베케트에게 중요한 것은 끈질김이다. 희망 찾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금융 독재는 확실히 절망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이를 위해 언제나 무엇이든 할 일이 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절망을 선전하는 선동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북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공산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북한 체제는 공산주의에 거의 받아들이기 힘든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북한 체제는 공산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군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체제일 뿐이다.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와 금융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다른 형태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공산주의에는 국가가 점차 억압적인 기능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마르크스가 '국가의 해체'라고 일찍이 말했던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무언인가.
"우리가 찾아야 할 모델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체제도 아닌 전혀 다른 길이다. 이 같은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에는 두 개의 전선이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라는 모델에도 대항해야 하고, 압제적이고 스스로 공산주의라 자칭했던 과거 공산주의 모델과도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모습은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새로운 어떤 것이다."
-젊은이들의 경우 어떻게 이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다른 가치는 다른 형태의 집단적인 삶 속에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 살고 생각하는 방식을 조직해야 한다. 이런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 만들어야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철학적인 조언은 할 수 있다. 언제나 어떤 이익을 만족시키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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