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등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패륜적 범죄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들은 양심적 가책이나 후회없이 폭행과 고문, 강간, 살인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감정이 없는 악마'가 왜 생겨나는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막을 수 있는지 등을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선한 신과 악마가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극단적인 악행이 왜 생기는지 묻지 마라. 그저 악의 본성일 뿐"이라며 악을 분석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추론은 "그는 정말로 악하기 때문에 ~을 했다"는 등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순환적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 정신병리학 교수인 저자는 종교적 영역에서 머물던 악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데 도전했다. 인간을 사물처럼 다루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의 지적 여정은 30년 넘게 이어졌다. 뇌 과학, 심리학, 유전학을 동원해 정신 의학에서 '성격 장애'로 묶여 있던 사이코패스와 경계성 인격장애, 나르시시스트(자아도취자) 등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타인의 생각과 기분을 파악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인 '공감'이라는 소재를 통해 악의 실체를 추적해나갔다. 제대로 공감을 하려면 타인의 생각과 기분을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공감 능력이 완전히 바닥나면(공감 제로)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가 어떻게 느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후회나 죄책감없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공감의 침식)는 것이다.
저자는 임상 연구를 통해 공감이 없어진 환자들은 뇌 속에서 공감 능력을 만들어 내는 열 군데 부위 중 내측전전두피질(사회적 정보 처리 담당), 안와전두피질(언어 표현 담당), 측두두정접합부(타인의 의도 판단 담당) 등의 기능이 크게 저하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악이라는 피상적인 말로 규정해온 인간의 잔인성을 '공감의 침식'이라는 과학적인 언어로 보여주는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공감 제로'가 온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공감 능력이 상실되면 타인과 공감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지만,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인물처럼 특정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을 갖는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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