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다. 인사를 나눈 순간, 안 그래도 무서워 보이는 눈을 매섭게 치뜨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내가 그 집에 갈 때마다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의 엄마가 2주간 집을 비우게 되면서 내게 어린 그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을 때였다. 하루에 한 번 들러서 식사를 챙겨주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녀는 내가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식사를 챙겨주며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없었다. 장마철에 무려 보름을 소낙비를 맞아가며 찾아갔는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다.
그녀의 그런 까칠함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녀의 부모였다. 그녀의 엄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좋지 않은 태도라고 그녀를 나무라기도 하고, 일부러 데리고 나와 인사도 시켜봤지만 그녀는 여전했다. 살면서 한 번도 이런 노골적인 무시를 받아보지 못했던 나는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졌다. 기고만장한 그녀의 이름은 비비. 그녀의 부모가 길에서 입양한 고양이다. 고양이 주제에… 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고양이가 싫었다. 남들이 고양이의 매력이라고 하는 도도한 태도, 제 몸을 닦아대는 모습, 크고 깊은 눈도 다 싫고 두려웠다. 내가 저에게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평생을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복수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집 골목의 길고양이들과 마주칠 때면 애써 고개를 돌리곤 했다. 언젠가 길고양이가 우리집 옥상 계단까지 올라온 날, 나는 식초를 뿌려 내쫓기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고양이를 보살피라니. 비비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다. 내가 태생적으로 제 종족을 꺼려한다는 것을. 더 나아가 못되게 굴기도 했다는 것까지 눈치 챘던 거다(그러니 요물이 아닌가). 어쨌든 비비는 지금도 내가 그 집에 들어서면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비비의 엄마인 히로미씨, 내 친구인 요코씨와 셋이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유창한 한국말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해요? 들개는 다 똥개라고 하구요. 나빠요."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흔히 쓰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 같은 표현이 덩달아 떠올랐다. 일상에서 우리는 다른 생명을 깎아 내리는 표현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그런 일이 그들의 영혼을 침범하는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폭력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던 나였지만, 나는 나쁜 의미에서 철저한 '인본주의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이라는 글에서 길고양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양이는 본디 넘쳐 나는 인간의 생활 냄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동네 바보 같은 동물이며, 고양이가 많다는 것은 동네 바보를 거둘 만큼 마을에 활기가 넘쳐 난다는 얘기이자 주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등에 피로와 고독감이 배어 있는' 고양이들이 가득한 마을이라면 주민들의 삶도 분명 팍팍할 것이라고 했다.
추석을 맞아 부모님 집을 찾았더니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이 그곳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길고양이가 보일러실에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아 시끄럽고 냄새나 죽겠다며 엄마가 불평을 하는 거였다. 내 방 앞에서 살아가는 네 마리의 고양이를 상상하니 나도 머리가 지끈거려 엄마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애처롭게 울던 소리가 못내 마음에 걸린 나는 돌아와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새끼들 자라면 내쫓더라도 명절인데 생선전이라도 좀 나눠주라고. 엄마는 답이 없었다. 전화까지 걸어 추궁했더니 늘 상냥한 우리 엄마가 모진 말을 하신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 그렇게 좋으면 네가 갖다 키워!" 나는 갑자기 구청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는 부모님 집 옆 동네가 생각났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구박받는 고양이 가족에게 옆 동네로 이사를 가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비비는 내게 조금은 영향을 끼친 걸까. 길냥이들의 생계까지 걱정하게 만들었으니…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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