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첫 예산안에 따라 국민 다수가 내년 늘어난 복지혜택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박근혜식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25조9,000억원(관리재정수지 적자)이라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확정한 세법개정안에 따라 정부가 연소득 7,000만원을 초과하는 근로자 110만명으로부터 소득세를 한해 33만~865만원씩 추가로 거둬드릴 수 있게 된 것도 일부 도움이 됐겠지만 재정건전성을 지키기엔 많이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 세제개편에 따른 계층별 세부담 증가액과 2014년 예산안에 담긴 세대ㆍ계층별 혜택을 바탕으로 가상의 사례를 들어 박근혜식 복지의 세대ㆍ계층별 대차대조표를 살펴본다.
특별한 소득이 없는 70대 A씨
A씨(75)는 틀니를 임플란트로 바꿀 생각이다. 그 동안은 비싸서 엄두를 못 냈지만 내년부터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이 절반(개당 75만~150만)으로 줄어 해볼만하다 싶다. 2015년 70세, 2016년 65세로 지원 대상도 확대된다고 하니, 매달 20만원으로 두 배 오른 기초연금을 아껴뒀다 내후년엔 이가 시원찮은 아내(70)에게도 임플란트를 해 줄 작정이다. 항암제ㆍ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비용도 지원해 준다고 하고, 200만~300만이던 병원비 부담금 상한액도 120만~250만원으로 준다고 하니 몸이 시원찮으면 참지 말고 병원을 찾을 생각이다. 치매환자 장기요양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자식들에게 짐 될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도 다소나마 가벼워졌다.
교육비 지출 많은 50대 중산층 B씨
연봉 6,800만원인 B(55)씨는 소득세 부담이 한해 3만원 늘어나는 반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많아졌다. 당장 셋째 아이 이상은 대학등록금을 1년에 최대 450만원까지 지원(1학년부터 시행)해 줘 부담이 크게 줄었다. 연소득 7,000만원 이하일 경우 국가장학금도 한해 90만~450만원까지 준다고 해 내년에 제대하는 둘째 대학등록금 걱정도 덜었다. 상병인 둘째 월급이 13만5,000원으로 15% 올랐다는 소식도 반갑다.
양육비로 힘겨워하는 30대 직장맘 C씨
맞벌이 하는 C(35)씨는 손해 볼 게 없다. 연봉이 3,500만원이라 추가 세부담은 없고, 어린이 필수예방접종 본인부담금이 폐지되면서 얼마 안되지만 쌈짓돈을 아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세 살 된 딸 아이가 B형감염ㆍ수두 등 11개 필수예방접종을 맞을 때마다 내던 5,000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더 짓는다는데 121개에 불과한 게 아쉽다. 하지만 주택구입ㆍ전세자금 지원액이 1조7,000억원 늘린다는 소식에, 운이 좋으면 주거비 부담도 줄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재활을 꿈꾸는 차상위계층 40대 D씨
맞벌이를 해도 한해 소득이 2,500만원이 넘지 않는 차상위계층 D씨는 세제개편으로 내년부터 근로장려금(EITC)를 한해 210만원(맞벌이 기준 최대) 받을 수 있어 빠듯한 살림이 그나마 펴지게 됐다. 2015년 도입되는 자녀장려금 150만원(맞벌이 3자녀 기준 최대)까지 합치면 정부 지원금이 360만원이나 된다. 주거급여에서 이름이 바뀐'주택바우처'를 내년 10월부터는 매달 3만원 늘어난 11만원씩 받는 것도 없는 살림엔 단비와 같다. 게다가 매달 일정금액을 저축하면 정부에서 같은 금액(최대 10만원)을 지원해주는 희망키움통장도 가입할 수 있게 됐다.
5억원대 아파트에 사는 고소득자 E씨
한 중견기업 임원인 E(60)씨는 속이 쓰리다.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긴 하지만 두 아들 장가라도 보내려면 전셋집이라도 구해줘야 해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내년부터 소득세를 113만원 더 내야 한다. 앞으로 복지를 더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 기꺼이 그럴 의향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본인이 얻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거의 없다. 20만원씩 준다던 기초연금도 못 받는다. 4대 중증질환(암ㆍ심장ㆍ뇌혈관ㆍ희귀난치질환)과 관련한 본인부담금을 연간 최대 34만원까지로 줄여준다는 얘기가 있어 그나마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당장 제도가 도입될 것 같지 않아 씁쓸하기만 하다.
정부는 이 밖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체계로 전환해 수급자가 83만가구에서 110만 가구 수준으로 30% 확대한다.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완화해 12만명을 추가로 보호대상에 포함한다. 장애인연금은 현행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으로 두 배 늘린다.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육아휴직급여 예산을 올해보다 275억원 확대한 4,379억원으로 편성했다. 육아휴직시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활용하도록 하는 출산ㆍ육아기 고용안전 지원예산도 28억원 증액한 551억원으로 잡았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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