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국정원의 수사권이 악용돼 끊임없는 정치개입과 정권안보의 뿌리가 되고 있는 만큼 차제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24일 국정원의 모든 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 개혁안을 내놨다.
반면 여권과 보수 진영에선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제2의 이석기'를 양산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여야 대표 3자회담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 등을 볼 때 대공 수사권 역시 국정원의 활동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논란이 진영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北의 南 적화 위협 끊이지 않는데 50년 역량 수사권 이관은 득보다 실"국정원 권한 약화하는 법안은北·종북세력 돕는 결과 낳을 것노하우 앞세워 지속 발전시켜야
민주당은 18대 대선에서의 국정원의 댓글사건 선거개입 책임을 물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등 주요기능을 몰수할 태세다.
민주당은 이미 '국정원 개혁 법안'을 7개나 발의했는데 진성준 의원 법안이 사실상 당론이고 나머지 법안들도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대공수사권 다른 기관에 이관, 보안업무 기획ㆍ조정 권한 폐지, 국내정보활동 금지, 국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제 도입, 대통령의 정보기관에 대한 지시ㆍ정보활동 요구 문서화, 예산 관련 세부자료 국회 정보위와 예결산특위에 동시 제출 등이 주요 골자다. 거의 해체수준이다.
하지만 현대국가정보학에서 정보기관의 정치 및 보안 정보수집은 첫번째 핵심 기능이다. 세계 각국 정보기관 요원들은 정치권을 최우선 대상으로 활발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도 우리 정치권이 최우선 목표대상이다. 현재 진행중인 이석기 사건도 국내 정치정보 및 보안정보 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밝혀 낼 수 없었다.
북한이 '국내정치권'을 대상으로 간첩남파ㆍ사이버해킹ㆍ원전테러 위협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수시로 하는 상황에서 보안정보 및 대공수사활동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보호를 위한 필수 사안이다.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일부 '정권안보' 활동을 하여 국민들의 지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착오적인 정권안보 활동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때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개선됐다.
정보기관 무력화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개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국정원과 대공수사권, 국가보안법 등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북한과 종북세력은 얼마나 변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지금도 간첩을 남파하며 남한을 적화시키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비서관이 포함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의 국내 지하철 정보 유출 사건, 탈북자 북한 납치 공작 등 지금도 간첩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은 2000년대 들어 '남한전산망을 손금 보듯이 파악하라'는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비대칭 전력의 하나인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테러와 심리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당ㆍ군ㆍ내각을 합쳐 약 1만2,000명의 사이버 전문 인력이 남한 인터넷에 대한 사이버테러는 물론, 체제선전ㆍ대남심리전ㆍ정보수집ㆍ간첩교신을 수행중이며 우리는 이미 금융, 언론 등 국가기간망이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바 있다. 유수의 포털사이트에서 노골적인 북한 찬양 글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을 이용한 대남 선전선동 활동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공세에 호응하는 국내 종북세력도 여전하다. 종북세력들은 각종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등의 게시물을 올려 국민들을 오도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에 가입하여 이적행위를 자행한 사람중에 이적단체 가입자는 물론, 정당 당직자가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밝혀져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정보원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및 대공수사 역량을 약화시키겠다는 것은 북한의 위협과 이에 호응하는 우리 내부의 적을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국정원이 보유한 50년 노하우와 전문 인력, 대북 정보망 및 외국 정보ㆍ수사기관 협조 네트워크를 없애고 다른 기관으로 이관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지난 2000.1~ 2012.4간 검거된 51명의 간첩 중에서 국정원의 정보ㆍ수사 활동으로 적발된 간첩이 46명이고, 경찰이 단독으로 적발한 경우는 5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분단을 경험한 국가들의 정보기관인 베트남MPS(공안부)나 예멘의 PSO(정치보안부) 그리고 중국국가안전부(MSS)들도 체제전복 및 宴?수사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국정원 손보기식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가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일로 결코 논란의 대상될 수 없다.
●문병호 민주당 국정원법 개혁추진위 간사"아마추어 수준 수사력 그나마 악용 본래 임무인 정보력 강화에 집중하라"이해관계 따라 수사권 오용돼정보 수집권·수사권 분리하면견제·균형 이루고 경쟁력 향상
같은 기간, 국회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관련한 두 가지 풍경이 연출됐다. 하나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로 칸막이 청문회가 진행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영장 집행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얼굴이 TV뉴스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전자는 밀행성을 기본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특수성 때문에 이뤄진 것이고 후자는 공개적인 활동이 불가피한 수사기관의 보편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불리할 때는 특수성을 핑계로 삼고, 유리할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신분을 노출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밀행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함으로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수사권의 악용이다. 수집한 정보를 조작해 수사를 벌일 경우 외부에서 이를 적발해 중단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광우병 촛불시위로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을 당시, 국정원이 합동수사본부까지 꾸리며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섰던 '부녀간첩단' 사건의 경우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재판부가 전화감청을 직접 청취한 결과 합수부가 제출한 녹취록이 조작되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기도 했다.
그 동안 국정원이 보여 온 수사의 특징은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동반한 대대적인 수사의 전개 그리고 떠들썩한 언론보도로 종북논란을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재판 과정에서 기소 대상자가 축소되거나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최근에는 국정원이 간첩혐의로 수사한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2011년에는 국정원의 수사를 받던 탈북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공수사권의 경우, 그 핵심인 국가보안법 7조(이적행위: 고무찬양 등)와 10조(불고지죄)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권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여야 합의로 폐지한 전례가 있다. 일부에서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기존 수사기관으로 이관할 경우 50년 전통의 수사 노하우가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그 50년 노하우의 대부분은 고문과 폭력으로 점철된 원시적인 수사기법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동안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사실상 독점해 오면서 대공수사에 대한 경쟁력이 상실되고, 수사능력도 제대로 향상되지 못했다. 명색이 대공수사 정예요원이라는 국정원 직원이 진보단체 회원을 미행하다 들킨 것도 모자라 아예 회원에게 붙잡힌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되기까지 한 것이 바로, 대공수사권을 50년간 독점하다가 아마추어 조직으로 전락한 국정원의 현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정원이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수사에 매몰되면서 정작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인 대북 및 해외정보에 대한 수집능력과 전문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국민과 대통령이 같은 시간에 TV뉴스를 보고서 김정일 사망을 알게 된 것도 대북정보 수집력의 붕괴로 인한 것이었다. 또,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해 노트북을 뒤지다 절도 혐의로 경찰에 신고 당하고,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입수했다며 감청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러 북한군이 교신 주파수와 암호체계를 모두 바꾸게 했고, 이로 인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암호체계 해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든 것도 바로 아마추어 조직으로 전락한 국정원이었다.
선진국의 경우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한 사례가 없다. 보안 방첩 수사의 경우도 기존 수사기관만으로도 충분하다.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정보기관이 수사기관에 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보수집 기능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것이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상호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정보기관과 같이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국정원의 수사권을 기존 수사기관으로 이관하고, 국정원은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인 정보수집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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