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원내투쟁 강화' 방침에 따라 정기국회 정상화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야간 의사일정 협의는 더디기만 하다. 여야 모두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선진화법은 사상 최악의 '몸싸움 국회'라는 평가를 받은 18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입법화했다. 다수당의 일방 독주를 막는 각종 견제장치를 제도화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여야 모두 자신들이 합의해 통과시킨 선진화법 때문에 새누리당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민주당 역시 시급한 민생현안을 무리하게 지연시키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표면적인 모습은 사뭇 다르다. 새누리당은 상당히 조급해 보인다. 민주당의 원내투쟁 강화가 사실상 선진화법을 무기로 삼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과반인 153석을 갖고 있지만 상임위에서부터 최소 60%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선진화법에 따라 민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가 어렵다. 법 개정은 물론 위헌소송 제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진화법을 국정 발목잡기에 이용하면 선진화법의 수명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아예 "헌법의 다수결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위헌소송 제기를 주장했다.
이는 정기국회를 정상화하기 전에 선진화법 개정 여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 없이는 의사일정에 합의하더라도 각종 법안 처리나 예산안 심의에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없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2월 임시국회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 논란이 한창일 때 불쑥 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했다가 역풍을 맞은 점도 감안한 듯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이 같은 모습은 자가당착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총선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를 통과시킬 당시의 원내대표는 황우여 대표였다.
공세적 입장인 민주당 역시 선진화법을 잘못 활용하다 '양날의 검'에 손이 베일 개연성이 꽤 있다. 여야간 이견이 큰 정치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시급성을 다투는 민생법안의 처리가 지연돼 서민 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경우 여당보다는 민주당에 책임론이 제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양승조 최고위원은 이날 새누리당의 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여야 합의로 처리한 법을 1년여만에 개정하겠다는 건 날치기를 해서라도 자신들 입맛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꼭 필요한 법안이라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지연시키거나 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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