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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9월 25일] 사필귀정 뒤에 남는 상처는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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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9월 25일] 사필귀정 뒤에 남는 상처는 어쩌나

입력
2013.09.2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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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제기된 지 20일 가까이 지났다. 공직자의 도덕성 논란은 이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등으로 정권에 밉보인 검찰총장을 내치려한다는 음모설로 비화했고, 급기야 청와대까지 연루된 불법사찰 의혹으로 번졌다. 출생의 비밀을 품은 막장 드라마에 난데없이 등장한 '전설 속 호위무사'의 무협활극, 정치 스파이물까지 뒤범벅된 사건은 이제 실체를 알 수 없는 흉측한 괴물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고 칩거해 온 채 총장이 24일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냈다. 그는 소장에서 "보도 내용은 100% 허위"라고 거듭 주장하며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 모자의 인적사항과 주소를 파악하는 즉시 유전자 감식 감정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임씨 모자를 기어이 불러내 유전자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두고 논란도 있다. 하지만 저 흉측한 괴물을 퇴치할 방법이 달리 없는 만큼 원만한 합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유전자 검사가 이뤄져 의혹의 진위가 가려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채 총장은 그동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을 여러 차례 입에 올렸다.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든 거짓으로 판명 나든, 불법 사찰로 캐낸 사생활 정보를 동원해 검찰의 수장을 찍어내려 했다는 더 큰 의혹의 진실이 밝혀져야 비로소 사필귀정의 막이 내려질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악몽이 채 씻기기도 전에 또다시 등장한 불법 사찰 의혹이 그대로 묻힌다면 대한민국의 시계바늘은 유신 시절로 뒷걸음치고 말 것이다. 더불어 '혼외 아들'로 단정한 보도가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조선일보는 "공직자가 어떻게 처신했기에…" 따위로 슬쩍 화살을 돌려 책임을 모면하려는 꼼수를 부려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93년 전통을 스스로 허무는 짓이다.

이 모든 난제가 해결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간의 논란 과정에서 임씨 모자가 입은 깊은 상처, 앞으로 법정 공방에서 더 참혹하게 겪을 지 모를 고통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몰지각한 일부 네티즌의 '신상털기'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런 행태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임씨 모자의 신상정보를 무람없이 까발린 일부 언론의 행태는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정당화될 수 없다.

첫 보도 후 채 총장이 '혼외 아들' 의혹을 전면 부인하자 조선일보가 후속 보도를 하면서 보인 행태는 참으로 치졸했다. 특히 편지를 통해 의혹을 부인하고 채 총장 이름을 도용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은 임씨에게 당당하면 아이 아버지를 밝히라고 윽박지르듯 몰아붙인 것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한술 더 떠 아이를 화자로 내세운 황당한 '창작소설 칼럼'을 써 기자를 떠나 인간됨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오늘 악마를 보았다"는 어느 평자의 한탄이 결코 과하지 않게 들린다. 아동의 권리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성명을 통해 지적했듯이,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 진실 규명이라는 미명 하에 누구보다도 존중 받고 보호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폭력적인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모든 언론이 각성해야 할 때다.

기자들이 실체가 불분명한 괴물 같은 사건의 뒤꽁무니만 정신 없이 쫓다 보면 어느새 괴물을 닮아가는 우를 범하기 쉽다. 눈 닫고 귀 막은 채 질주하면서 무고하게 짓밟히는 이들의 한숨과 비명을 외면한다면, 집요하게 사실을 캐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역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의 20여년 기자 생활을 되돌아 보며, 다소 식상하지만 절실한 다짐을 읊조려 본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이희정 사회부장 jaylee@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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