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제철소 완성, 유라시아 횡단철도사업 참여, 그리고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신축까지. 정몽구(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최근 행보를 읽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기업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못다 이룬 소망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기업인 정몽구'인 동시에 '장자 정몽구'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2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에 참석했던 정몽구 회장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는 후문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오랜 숙원이었던 일관제철소를 7년의 대장정 끝에 마침내 완성했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우리만큼 철판을 많이 쓰는 회사가 또 어디 있나. 우리가 직접 철강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관제철소 건설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집념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정몽구 회장이 옛 한보철강을 인수해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한 건 완성차 회사로서 안정적 강판확보를 하려는 경영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친의 오랜 꿈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도 작용했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참여도 같은 맥락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우리가 만든 열차로 부산에서 유럽까지 달리고 싶다"며 1964년 현대로템을 설립했지만, 생전엔 국내 차량공급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꿈도 점차 현실로 다가가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에 대한 양국간 의지가 확인된 데 이어, 러시아 최대 철도차량 생산기업인 UVZ의 최고위급 경영진들이 현대로템의 창원 철도공장과 연구소를 방문, 러시아 철도사업에 대한 협력 및 기술이전 방안 등을 협의하고 돌아갔다. 정몽구 회장은 "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1만9,000㎞를 배로 가면 한 달 가까이 걸리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열흘 안에 갈 수 있다. 운임도 컨테이너 1대당 평균 980달러로 2,200달러의 선박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현재 이 사업을 적극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의 현대건설 인수도 '장자의 결정'성격이 짙다. 당시 그룹 안팎에선 제수(현정은 현대그룹회장)와의 대결에 대한 부담이 큰데다, 건설업이 자동차산업과 시너지를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적잖은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장자로서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을 꼭 인수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결국 이를 성사시켰다.
23일 준공허가가 난 서울 여의도 전경련 신축빌딩도 정주영-정몽구 부자와 인연이 있다. 전경련 회관은 지난 1977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지은 건물. 당시 공사를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30여년만에 다시 지어진 신축건물 역시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실상 아버지가 지은 건물을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다시 지어 완공하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추후 준공식에도 정몽구 회장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하나를 물려받았지만 결국 10여년 사이 회사를 비약적으로 키우면서 장자로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들을 조용히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고 평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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