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좋으니깐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1,000만원쯤 넣어뒀고, 주식계좌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너무 불안해서 일단 돈을 빼려고요." 회사원 이모(36)씨는 24일 서울 동양증권 여의도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이미 10여명이 ATM앞에서 진을 쳤고, 창구 대기자는 100명을 훌쩍 넘었다.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동양증권 고객들이 잇따라 주식계좌와 CMA, 펀드 등에서 돈을 찾고 있다. 이날 동양증권 전국 지점에는 원금보장과 대비책을 묻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일부 지점에서는 고객들의 자금인출로 ATM의 일일 출금 한도가 넘어 정지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금융권은 23, 24일 이틀새 동양증권의 고객예탁금 중 CMA계좌에서 6,000억원이 빠져나가는 등 약 2조원의 자금이 이탈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나중에 뒤통수 맞는 것보다 일단 빼서 다른 곳에 두는 게 나은 것 같다"며 CMA계좌에서 돈을 모두 인출했다.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한 김모(32)씨는 "손실을 보더라도 일단 환매해야 할지, 아니면 좀더 믿고 기다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고 불안해했다.
고객들의 인출사태에 동양증권은 홈페이지와 각 지점에 "위탁자산, CMA, 신탁, 채권과 펀드 등은 모두 공기업인 한국증권금융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보관돼 100% 보호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단순히 불안심리로 자산을 인출하면 약정이자를 받지 못하거나 원금 손실을 입는 등 직접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현재 동양그룹 유동성 우려 상황은 그룹 일부 계열사들의 자금난 문제일 뿐 유동성이나 건전성 측면에서 동양증권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도 이날 "동양증권 고객 재산은 공기업과 은행이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어 피해는 없으며 ELS 등을 안전하게 관리하는지 점검 중이다"고 사태진화에 나섰다. 동양증권은 금감원의 특별점검 결과 발표 영향 등으로 계열사 중 유일하게 이날 주가가 반등했다.
문제는 투기등급으로 분류됐던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등의 기업어음(CP)을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이다. 7, 8%대의 고금리와 조기상환청구권이라는 유혹에 동양그룹 계열사 CP를 사들인 개인투자자만 1만5,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이 사들인 CP 규모는 약 5,000억원. 금융업계 관계자는 "동양그룹 신용도나 안전성이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고금리의 매력에 CP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이 없다"며 "동양그룹 부도설이 나돌면서 회사채를 살 사람도 없지만, 팔린다 해도 액면금액의 20%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엉뚱하게 동양생명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날 보험금 보장 등을 문의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각 지점에 쇄도했다. 동양생명측은 "동양그룹의 동양생명 지분은 3%에 불과하다"며 "대주주인 보고펀드가 운영 중이며, 동양그룹과는 완전히 분리 경영을 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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