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막아 보라"작정한 듯 배우들, 떠도는 모든 의혹 쏟아내입단속하려 하는 '다방 사장'에 관객과 함께 날 선 질문 세례도 무대촬영 권장·관람료 후불 파격연극의 사회비판·정치풍자 복원 댓글사건 조명 작품도 곧 무대에
천안함 침몰 의혹을 다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최근 상영 중단 사태를 향해 연극인들이 통쾌한 일격을 날렸다. 20일 개막해 내달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에서 공연하는 연극 '천안함 랩소디'(극단 완자무늬)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이후 위축되었던 예술 분야의 사회 비판, 정치 풍자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연극계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애초 우회적인 풍자를 통해 온화한 방법으로 천안함 침몰 사건의 의혹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 달리 이 연극은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이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을 이끌어낸 세력을 향해 "우리도 막으려면 막아보라"는 듯 대사에 날이 서 있었다. 제작진은 "우리를 누군가 간섭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지만, 아직 관객이나 외부 단체 어디서도 불편한 감정을 표시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무대는 버려진 공사판처럼 어지럽다. 천안함의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부실한 외관은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상징한다. 극중 화자인 고물상 박달(명계남)은 조수인 조카 억수(조영길), 다방 아가씨 연자(윤국희)와 함께 고물과 연평도의 전설을 매개로 천안함 침몰의 의혹을 얘기한다. 갑자기 등장한 다방 사장(홍승오)은 자신을 모 애국청년단의 간부라 칭하며 이들의 만담 수준에 불과한 천안함 의혹 들추기에 '종북 좌파'의 딱지를 붙이고 입을 다물라 한다. 다방 사장은 "내가 바로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 중단하게 한 사람이다" 며 "정부가 종지부 찍은 사건을 들쑤셔대는 이들은 모두 종북"이라고 몰아세운다.
다방 사장은 또 다른 가능성, 혹은 진실일 수 있는 누군가의 의견을 묵살하는 사회 분위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가로막은 어떤 세력을 의미한다. '천안함 랩소디'가 제목에서 암시하듯 천안함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소통 부재를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안함 랩소디'는 천안함 침몰에 대해 언론 등에서 거론했던 거의 모든 의혹들을 제기한다. 배우들은 군의 CCTV 영상, 천안함 절단면 미공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의혹을 거론조차 못 하도록 막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도 언급한다. 고물이 대부분이던 소품은 다방 사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천안함 관련 자료나 서적들로 대치되고 무대 장막에는 산화한 장병들의 원혼을 상징하는 그림자들이 나타난다. 명계남은 극을 마무리하며 "연극인에게도 정의(진실)를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관객들을 향해 소리친다.
'천안함 랩소디'는 극의 형식도 파격적이다. 공연 중 사진 촬영을 금하는 여느 공연과 달리 마음껏 찍으라고 권장한다. 공연 내내 관객들은 카메라, 휴대폰을 꺼내 들고 배우와 무대를 촬영했다. 관람료도 후불제다. 보고 나서 각자 사정과 만족도에 따라 돈을 낸다. 배우들은 '의혹'에 관한 질문을 관객들이 하도록 유도한다. 질문한 관객에게는 배우가 막걸리를 따라준다. 다만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정치 풍자가 불편하다면 관람을 권하지 않는다. 60석에 불과한 소극장이어서 배우들 몰래 불편한 심기를 유지하기 힘들어서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에 맞서는 연극계의 대응은 '천안함 랩소디'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연극의 사회성 복원을 위해 구성된 '극사발 프로젝트'는 내달 3일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극 '아이리스 피씨방'(연출 양동탁)을 대학로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막았던 '세력'들이 감시할 무대가 속속 이어지고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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