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M의 주량은 대략 맥주 두 병이다. 주량이 이 정도면 보통 술을 꺼리기 마련이지만, M은 나름으로 술을 좋아한다. 금세 취하고, 취한 기분을 한껏 즐기고, 잠깐 엎드려 자고, 일찍 간다. 그리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이들이 다음날 숙취로 고생할 때 혼자서 맑은 머리로 아침을 맞는다. 그가 비틀비틀 먼저 술집 문을 나서던 어느 날 밤, 자리에 남아있던 우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쟤는 연비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러게. 취해서 즐거울 건 다 즐겁고, 취해서 괴로울 건 별로 없잖아."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월등히 높은, 아주 경제적인 음주 유형인 거지 뭐."
우리는 그날 M을 꽤나 부러워했고, 화제는 술을 넘어 '삶 자체의 연비'로 넘어갔다. 그러고 나니 막상 다들 머뭇거렸다. 정말 '연비가 좋은 삶'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실은 반대가 아닐까. 누구는 연비가 좋은 경차를 연비가 나쁜 고급 승용차로 교체한다. 누구는 소주에서 위스키로 주종을 바꾸고, 누구는 배드민턴에서 골프로, 스케이트에서 스키로 취미를 바꾼다. 옷을 살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눈은 높아지고 만족감은 낮아진다. 속물근성 때문이든 까다로워진 내적 기준 때문이든 한 줌의 즐거움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점점 커져만 간다. 우리의 삶은 왜 연비가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마는 것일까. 소박함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일까.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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