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서 약육강식은 정상적 상황이다.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고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이 잔혹하다거나 비정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하지만, 잡아 먹히는 입장에서는 몹시도 억울하고 화도 날 것이다. 그러나, 약자인 사슴이 호랑이에게 복수할 수도 없고 살아남은 다른 동료 사슴들도 복수는커녕 호랑이만 보면 피해서 도망다니기 바쁠 것이다.
말벌의 경우, 자신들을 공격하는 대상이 있으면 집단적으로 그것을 공격하기는 하나 이는 복수의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자위적 측면이라 하겠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언젠가 외신에서 나이든 코끼리가 오래 전 자신을 괴롭혔던 어떤 사람을 마치 보복하듯이 공격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는 모든 코끼리의 보편적 특성은 아니기에 감안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의 수 많은 동물들 중 인간과 유인원(類人猿)류에 해당하는 동물들은 두 발로 서서 걸어가거나 뛰고, 두 팔로 도구를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겠으나 필자는 '나 외의 다른 존재를 향해 저주하고 복수한다'는 점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 외의 다른 존재를 향해 저주하고 복수한다'는 것은 감정의 골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데 사람도 그러하나 문득, 유인원(類人猿)류 중에서 침팬지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족이 다른 영토로 옮기거나 확장하거나, 다른 침팬지 무리들에게 공격을 당하면 함께 뭉쳐서 다른 무리들을 공격하는데 상대방 침팬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어린 아기 침팬지까지도 처참하게 죽여서 먹는다고 한다. 가끔 침팬지가 사람을 공격하는 바람에 심각하게 다쳤다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근본 습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사람도 그러하다. 오래 전 당했던 굴욕으로 인해 처참하게 복수한다는 소재는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위적 측면이건 아니건 상대를 공격한다는 의미는 공통적인데 왜 유독 인간과 유인원들이 더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까? 아마도 그것은 감정이 스며든 공격이 이뤄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자연계에 순응한 공격이 아니라 감정이 스며든 공격이기 때문에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잔혹하게 죽이는 것이고 그러한 행위는 또 다른 저주와 복수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 같다.
누구나 저주와 복수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이 자리를 빌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저주와 복수는 살성(殺性)이다. 살성은 곧 죽음과 직결되는데 문득, 정렴 선생의 경우가 생각난다.
조선 3대 기인으로 토정 이지함,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중 정렴 선생은 야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도인이다.
정렴의 아버지는 '정순붕'으로서 을사사화 때 수많은 반대파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이것을 본 정렴은 이렇게 사람들을 죽이면 30년후에 반드시 패망함을 말했는데 과연 그의 아버지는 1577년에 패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위 정렴 선생의 예언 내용을 본 후, '이 예언은 당연하고도 쉬운 편이다'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무고한 죽음에 있어 원인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건 죄값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렴 선생은 주역에 능했다고 하는데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배합의 개념을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역에서 배합((配合)이라 함은, 뒤집어 진다, 바뀐다는 의미로써 만물의 성장과 쇠락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마치 달이 차는 것과 비슷하다.
초승달을 보면 달이 둥글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보름달을 보면 달이 둥글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같이 주역의 배합괘(配合卦)를 통해 보면 만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알게 해주는데 패악을 저지르거나 부정함을 저지르거나 저주, 복수의 행위가 발생되면 그 당시는 아무일 없는 듯 하나 향후에 반드시 그에 반하는 문제가 발생된다.
우선 저주, 복수가 행해지면 본인에게 마가 끼인다. 본인에게 마가 끼이니 만사가 막히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권력을 얻어도 일시적이요, 재물이 모이고 여유가 생길 듯 하면 병환이 찾아온다. 이 후 그의 자손에게도 그 영향이 나타나니 대가 끊어지거나, 패망하거나, 단명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불교의 윤회설과도 연관이 있다 하겠는데 환생한 어느 고승은 자신의 전생을 보니 비록 부유한 권력자의 삶을 살았으나 실은 피와 복수의 삶이었음을 본 뒤 더욱 수행에 증진하였다고 한다. 즉, 현세의 패악은 후세까지 이어지니 그 스님은 현세에서 모든 것이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복수를 언급하니 조선시대에 사면이 되지 않는 중대범죄 중 '독약이나 귀신에게 저주하게 하여 고의로 꾀를 내어 사람을 죽이는 것' 이 떠오른다. 이는 사극에서 여인이 인형에게 바늘을 꽂으며 저주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것과 흡사한데 장희빈의 죄명이 이와 같았으니 그 당시 실제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도 일부 무속인을 통해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장희빈이 자신이 거처했던 취선당 뒤편의 사당에서 인형왕후를 저주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일부 무속인들은 상대방을 저주하는 굿이나 부적을 권하고 있다.
남편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애인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복수해야 하니 사술을 통해 그 사람을 죽게하거나, 가정이 깨어지거나, 패가망신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허무맹랑한 말로 들리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영적인 감응이 강한 무속인이 사술을 부리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따라서, 참으로 괴이하고 무섭고 두렵다 하겠다.
하지만, 해당 무속인과 상담자 모두에게 필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무속인 본인은 물론이요, 상담자 또한 3대에 걸쳐 마가 끼이길 원한다면 해도 좋다.
사술을 시행하면 무속인 본인은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모시던 신(神)도 일찍 떠나가므로 결국 마장에 끼여 좀비와 같이 되니 몸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상담자 또한 저주의 당사자이니 처음은 원하는 대로 된 듯하여 기분이 좋겠으나 결국 마가 끼이니 현.후세 모두 불행한 삶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무속인의 사술은 물론이요, 남을 원망하거나, 저주하거나, 복수하는 경우 그 당시는 시원한 듯 해도 결국 나에게 해가 미치게 되니 어떤 형태로건 참고 피하는 것이 좋다.
성경에 '내 이웃을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문구가 자주 나오는데 이는 단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마가 끼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방법이요, 나의 후손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행동이니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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