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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4일] 당신의 추석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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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4일] 당신의 추석은 어땠나요?

입력
2013.09.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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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월요일은 다들 정신없이 보냈을 것 같고, 오늘쯤에는 추석 연휴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복기하면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을 것 같다. 서구의 학자들은 사람들이 긴 휴일을 보냈을 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휴일은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휴식과 여행을 제공하고 인간관계를 복원시키거나 강화시켜 이른바 '사회자본'의 활성화를 돕는 측면이 있다. 때마침 내년 공휴일수가 67일로 지난 12년래 최다 수준이라는 반가운 뉴스가 있어 직장에 목을 매어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은 벌써부터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추석은 그다지 즐거운 날만은 아니다. 위계사회의 속성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어른들이 평소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훈계성 발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이들에게 쏟아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결혼해라", "취직해야지", "승진은 언제냐?", "아이 계획은 없냐?", "(임신을) 노력은 하는데 안되는거냐" 등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송편이 목에 걸릴 것같이 무거운 말들 일색이다. 물론 명절을 맞아 어른들이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손자·손녀에게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말들이니 분명히 선의에 기반한 말씀들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전하는 관심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자꾸 반복해서 들어야하는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곤욕스러운게 아니다. 그래서 어떤 젊은이들은 바쁜 업무를 핑계로 추석귀성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명절은 성묘, 가사노동, 교통체증 등으로 가뜩이나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다툼도 크게 번질 수 있다. 서로가 지쳐있는 상황에서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묵은 갈등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갈등의 불길은 마치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만다. 연중 이혼 건수를 살펴봐도 설, 추석, 여름 휴가가 끼어있는, 3월, 8월, 10월이 가장 많다고 하니 명절과 가족내 갈등은 꽤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즘은 부부간 갈등뿐만 아니라, 고부(姑婦)갈등, 장모-사위간의 갈등, 그리고 며느리와 딸들간의 갈등까지 가족간 갈등이 심화되고 다양화되는 추세까지 보이고 있다.

명절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열쇠는 '배려'라고 말할 수 있다. 명절 때 부부간 다툼은 가사분담이나 '부인 집에 (언제, 어떻게) 들러야 하나' 같은 아주 간단한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자신의 친지들을 보고 싶어할지 공감해보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가사노동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방도를 찾아보는게 어떨까. 명절 후 2~3일 정도는 남편이 나서서 가사일을 평소보다 더 부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내는 남편이 명절 휴일 전날까지 업무에 시달리며 쉼없이 달려왔고, 명절 때 조차 쉬기는커녕 가족들을 돌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갈등의 소지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지혜는 우리 전통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조선시대 부녀자에 대한 억압이 심하던 시절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반보기'가 행해졌다. 반보기란 '양쪽 집의 중간 위치에서 만남' 또는 '하루 중 반나절만 만남'을 의미하는데, 추석전후, 한여름, 또는 겨울철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지(주로 여자)들이 양쪽 집의 가운데쯤에 있는 명승지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우의를 다진 전통이다. 당시 여자들의 외출이 어려웠고 출가외인의 사회적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며느리와 친정 가족, 사돈 부인간의 만남이 이런 '반보기'에 의해 행해졌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당시 여자들에게 가해졌던 억압이 안타까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여자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던 조상들의 기지가 새롭게 느껴진다.

아무튼 추석은 지나갔다. 연휴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는게 아직은 쉽지 않아보이지만, 새벽 이슬 맞으면서 신바람나게 일하다 보면 그까짓 마음속 갈등쯤은 멀리 날려보낼 수 있으리라. 우리에겐 곧 다가올 연말연시와 무려 67일의 공휴일이 있는 2014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김장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융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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