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9월 24일] 키신저의 두 얼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9월 24일] 키신저의 두 얼굴

입력
2013.09.23 12:06
0 0

콘도르는 안데스 산악지대에 사는 수리과의 맹금류다. 길이 1.3㎙에 몸무게는 10㎏이 넘는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은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하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죽은 조상이 환생한 것이라며 절대자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엘 콘도르 파사(콘도르는 날아가고)'는 독립영웅의 환생을 바라는 페루 국민의 염원을 담은 토속음악으로, 사이먼&가펑클이 애잔한 선율에 담아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 '콘도르 작전'은 1970~80년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남미 친미국가들이 공산주의에 공동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개한 '좌파 때려잡기'였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6개국 정보수장들은 75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콘도르 네트워크를 가동한 뒤 야당정치인, 반체제 인사들을 대한 암살과 납치공작을 자행했다. 83년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되면서 5만명이 살해되고 3만명이 행방불명 됐으며 40만명이 투옥됐다.

▲ 콘도르의 주역은 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2006년 사망) 전 칠레 대통령이었다. 집권 17년 동안 자행된 '더러운 전쟁'으로 3,200명의 민간인이 사망ㆍ실종됐다. 이런 피노체트를 조종하고 지원한 배후가 '미국 외교의 아버지'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라는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조지 워싱턴대는 최근 정부문서를 인용, "키신저가 남미의 첫 민주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를 앞세워 군사쿠데타를 입안하고 감독까지 했다"고 전했다.

▲ '죽의 장막'을 걷어 올린 키신저가 독재정권을 비호한 정치공작의 장본인이라고 비난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가안보기록연구소(NSA)에 따르면 키신저는 76년 콘도르 작전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만류해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 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를 침공, 피의 살육을 벌이기 하루 전 독재자 수하르토와 회담한 것도 그였다. 그가 73년 미국ㆍ 북베트남(월맹)ㆍ월남의 파리협정 체결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평화상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그는 올해 90세다. 고해성사를 할 시간도 얼마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