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색의 향기/9월 24일] '먹방'이 주는 메시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색의 향기/9월 24일] '먹방'이 주는 메시지

입력
2013.09.23 12:01
0 0

요즘 TV를 시청하다 보면 흔하게 듣는 단어가 '먹방'이라는 말이다.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들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본래 먹방이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인터넷 방송에서 비제이(Broadcasting Jockey)가 컴퓨터 앞에 앉아 웹캠과 마이크를 놓고 시청자들과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방송이 먹방이다.

사실 먹는 방송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일일연속극의 가장 흔한 장면도 식사하는 장면이며, 요리 프로그램이나 맛 집 소개 프로그램의 말미에는 늘 시식하는 장면이 나오기 마련이다. 먹는 방송, 정확히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먹방이 왜 새로운 트렌드처럼,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는 것일까.

대개 작은 방의 컴퓨터 앞에서 비제이 혼자 먹방을 진행한다. 헐렁하고 편해 보이는 일상복 차림의 비제이 주변에는 각종 음식 전단지가 즐비하다. 먹는 음식은 아침은 마트음식, 점심은 중식, 간식은 치킨, 저녁은 피자, 야식은 족발과 같이 배달음식이 주종을 이룬다. 단무지는 아삭한 소리를 내기위해 반을 접어 씹고, 쌈을 싸는 동안은 먹는 흐름이 끊길 수 있으니, 족발 따로 야채 따로 계속해서 흡입하듯 음식을 입에 넣는다.

후루룩 쩝쩝과 같이 먹는 소리는 되도록 요란하게 하고,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표현과 감탄사는 끊이질 않아야 한다. 너무 맛있다는 기쁨에 욕설을 섞는 것은 당연한 반응으로 양해되며, 최대한 우악스럽게 먹고, 과도한 감정표현을 할 때, 채팅창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인기 있는 먹방 비제이는 수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는 인식도 깊다. 인간의 기본 욕구 가운데 왜 먹는 것만큼은 혼자 하는 걸 싫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혼자 식사하는 것이 싫어서 배달이나 포장 음식을 이용하고, 음식점에서 먹어야만 한다면, 주변의 시선을 피해 스마트폰으로 웹 서핑을 하며 식사를 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서 먹방을 하게 되었다는 먹방 비제이의 말처럼, 실제로 먹방 시청자는 혼자 밥을 먹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쓸쓸한 자취방, 해먹는 것도 귀찮아서 시키게 되는 배달음식. 하지만 즐거운 농담과 이벤트를 벌이며 혼자 맛있게 먹는 비제이의 모습을 보면, 혼자 먹는 나도 즐겁다는 동일시가 자리 잡는다.

결국 먹방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대인, 특히 우리 젊은이들의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대가족 중심이 아닌 1인 형태의 주거를 갖게 된 젊은이들의 외로움이 더해가는 현상과,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의 대량 보급, 그리고 혼자지만 즐겁게 먹고 있는 비제이를 보며 느끼는 동일시라는 심리적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엊그제 추석의 긴 연휴가 있었다. 사실 추석에 가족, 친지들을 만나 한 일이라는 것도 식사를 한 일이 대부분이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사이사이 송편과 전,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계속해서 음식을 해서 먹기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같이 먹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따로따로 먹다가 함께 모여 먹었다는 것은, 먹는 즐거움을 같이 나누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추석연휴에도 먹방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야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먹방은 취업, 결혼, 진로 문제들 앞에서 불안정한 젊은이들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먹방을 시청하는 심리는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젊은이들의 자기방어기제라 볼 수 있다. 단순히 재밌게 먹고 즐기는 쇼와 오락의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먹방은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게 던지는 '외롭다'라는 메시지이다.

안진의 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