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권 기독교민주당(기민당)-기독교사회당(기사당) 연합이 22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3선 연임이 확정됐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수립 이래 3선에 성공한 총리는 콘라트 아데나워(1949~63년 재임), 헬무트 콜(1982~98년)에 이어 세 번째다. 동독 출신이라는 정치적 약점을 딛고 2005년 여성 최초이자 최연소 독일 총리로 당선돼 8년 동안 재임해온 메르켈이 다시 4년 임기를 채울 경우 11년 간 영국 총리를 지낸 고 마거릿 대처를 넘어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가 된다.
과반의석 확보 아깝게 놓쳐
연방의회 의원 630명이 선출된 이번 총선에서 기민ㆍ기사당 연합은 41.5%를 득표했다. 기민당 중심의 보수연합 득표율로는 1990년 총선(43.8%) 이래 최고치다. 양당은 과반에 5석 모자란 311석을 얻었지만 연정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당선자를 못내 단독 과반 달성엔 실패했다. 독일 의회 선거에서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지지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하는데 지역구 1위를 3명 이상 내거나 정당지지율 5% 이상을 얻은 정당만 의석을 배분받는다.
기민ㆍ기사당 연합은 192석을 얻은 사회민주당(사민당) 또는 63석을 얻은 녹색당과 연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BBC방송은 "국정 안정을 위해서는 중도좌파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필요하지만 사민당 내 반대가 적지 않다는 점이 변수"라고 분석했다.
메르켈 '엄마 리더십' 주효
독일 주간 슈피겔은 메르켈의 별명인 엄마를 언급하며 이번 총선을 '엄마의 승리'라고 논평했다. 메르켈이 구축한 신뢰의 이미지가 유럽경제 위기, 중동 정세 불안 등 혼란기의 표심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 등의 현안이나 야당의 정치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논쟁 자체를 만들지 않은 메르켈의 선거운동은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 심리를 간파한 전략이었다.
거창한 비전 제시보다 차분한 현안 해결을 중시하는 메르켈의 '엄마 리더십'은 유로존 경제위기 국면에서 신뢰를 얻었다. 메르켈은 유럽 최대 경제국 수장으로서 유로존 해체 위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한편 그리스, 스페인 등 부실 국가들이 재정건전성 강화에 나서도록 압박했다. 동시에 자국 경제 관리에 나서 실업률을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인 6.8%로 끌어내리고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하인리히 오베로이터 독일 파사우대 교수는 "메르켈은 유로존 위기라는 난국에서 독일의 이익을 지키고자 헌신적으로 노력한 지도자로 국민에게 각인됐다"고 평했다.
보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도 승리를 거들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직후 원전 폐기를 전격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선거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를 위한 연금제 도입 등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사민당의 표밭을 잠식했다. 슈피겔은 "메르켈 실용주의의 바탕에는 소비세율 인상 등 고강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고전했던 2005년 총선의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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