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그림들을 보고 왔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과 가까운 도시 광주에 작품들을 모은 전시회였다. 익히 알려져 있듯 김환기는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지우고 점선면과 색채에 집중한 추상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둘러보다 보니 내게는 '갖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는데, 물론 진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과욕은 아니었고 저 색감, 저 패턴, 저 분할과 구획을 내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탐심이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저 그림을 패턴처럼 배치해서 여름 커튼을 해 달면 좋겠구나… 저런 색감에 저런 점을 찍어 넣고 유약을 바른 머그컵에 커피를 마시고 싶은걸? 저런 청색의 셔츠를 흰 바지에 받쳐 입으면 멋질 텐데… 나의 마음은 그의 그림들을 액자 안에 그대로 두지 못하고 자꾸 내 생활 쪽으로 데려오려 한다. 실용의 디자인이기라도 하듯.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릇과 옷감 등을 위해, '실용의 목적'을 겨냥하여 색을 탐구하고 점을 찍었다면, 디자이너 김환기는 화가 김환기의 깊고 푸른 세계에 닿을 수는 없었으리라고. 목적 없는 아름다움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쓰일 수는 있지만, 특수한 목적이 처음부터 목적 없는 아름다움을 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충족될 수 없는 욕심은 이만 접고 언젠가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에나 들러야겠다. 아쉬우나마 아트샵에서 손수건과 엽서 몇 장 사와야지.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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