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오시비엥침이라는 도시를 1997년 여름 방문한 적이 있다.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이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유대인을 포함해 150여만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적잖은 유대인들은 제1수용소 입구에 새겨진 '노동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나치의 사탕발림 문구에 속아 유럽 전역에서 이 곳으로 모여 들었다. 노동을 통해 귀중하게 번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꾸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아우슈비츠를 찾았으나 이들을 기다린 것은 노동 착취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으로 이끈 독가스실 뿐이었다.
지금은 유대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제1수용소에서 나치가 유대인들을 독가스실로 내몰기 전에 그들의 몸에서 뽑아낸 금니와 머리카락 등을 보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소름이 끼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던 당시를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카를 슈미트케라는 독일인이 우리 일행을 안내한 일이다.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건너와 부산 주재 독일 명예영사로 있었던 그는 평생 약자의 편에 섰던 인물이다. 외모가 헌칠한데다 입가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였지만 유독 아우슈비츠 수용소 앞에서는 숙연해졌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기자는 유대인 학살의 장본인인 나치와 같은 독일인으로서 아우슈비츠에 온 소감을 묻고 싶었지만 너무도 민감한 내용이라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전후 독일이 나치 만행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그 후에 알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많은 독일 정치인들이 요즘도 홀로코스트를 반성하고 사죄의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슈미트케에게서 듣지 못한 대답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아마도 "침략, 전쟁, 학살을 자행한 과거 나치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통해 후손들이 다시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일본 정부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ㆍ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을 최근 공식 추천했다. 일본은 이들 산업혁명 시설이 제조업 대국이 된 역사의 상징으로, 일본의 급속한 산업 발전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추천 이유로 내걸었다. 하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탄광섬 하시마(군함섬)에서 100명이 넘는 한국인 징용인이 노동 착취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고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징용인 1,600여명이 숨진 사실을 일본 정부와 언론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머물지 않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세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잔인한 역사를 상징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전쟁이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규슈ㆍ야마구치 관련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겠다면 우선 식민 시대 주변 국가에 자행한 만행을 철저하고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한창만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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