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4일로 예정된 유엔 총회 연설에서 경제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포르도 핵시설 폐기를 제안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이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로하니와의 서신교환 사실을 공개하고 이란 정부는 "미국과 신뢰를 구축할 준비가 됐다"고 밝히는 등 이란 핵개발로 촉발된 양국의 오랜 갈등관계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슈피겔은 16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로하니가 포르도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기구의 감시 아래 원심분리기를 제거하는 대신, 미국ㆍ유럽에 원유 금수조치 및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로하니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를 공식 제안할 계획이며, 이에 앞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22일 뉴욕에서 핵협상 파트너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 대표인 캐서린 애쉬턴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만나 향후 협상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 북부 산악지대에 설치된 포르도 핵시설은 나탄즈에 이어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우라늄 농축시설이다. 원심분리기 700대로 20%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시설은 지하 70m에 조성돼 외부공격을 통한 파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온건 성향인 로하니 정부는 8월 출범 이래 핵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설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로하니는 이란 최고지도자 직속기관인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소관이던 핵협상을 외무부로 외관해 측근인 자리프 장관에 수석대표를 맡겼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는 1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이란 핵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과 신뢰구축에 나설 준비가 됐다"며 협상재개 의욕을 밝혔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5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로하니 대통령과 핵개발·시리아 사태 등에 대해 서신을 교환했다"고 공개하며 화답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 34년 만에 양국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백악관은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유보적으로 답하면서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P5+1에든 양자대화에든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로하니 정부가 11년 동안 답보하고 있는 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것은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다. 올해 1~4월 이란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올랐고, 수백만 가구가 파산할 지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슈피겔은 "로하니 입장에서 정치적 지지기반을 넓히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원을 받으려면 서방의 경제제재를 풀어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서방에 너무 많이 양보할 경우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를 주축으로 한 보수파의 정치적 반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핵협상은 로하니 정부에 있어 양날의 검과 같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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