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화학무기 사태를 조사한 유엔이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공식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화학무기 사용 주체가 규명되지 않아 서방과 러시아가 각기 정반대로 해석하는 등 시리아 해법을 둘러싼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제출한 38쪽 분량의 보고서는 "유엔 조사단이 시리아 현지에서 수집한 로켓 파편에서 치명적 살인무기인 사린가스가 검출됐고,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에서 채취한 토양ㆍ대기 증거물 30개에서도 예외 없이 사린가스가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는 "사린가스는 M14 대포를 통해 다마스쿠스 외곽 자말카, 에인 타르마 등 광범위한 지역에 살포됐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화학무기 사태가 발생한 8월 21일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과정에서 다친 환자 34명으로부터 조사단이 확보한 혈액, 소변, 머리카락에서도 화학무기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현장에서 심층 면접한 피해자와 유족 50여명의 진술에서도 화학무기가 사용된 정황이 포착됐다.
반 총장은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부가 민간인을 학살한 이후 가장 심각한 화학무기 공격이자 21세기 최악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이라고 강력 비판하며 "국제사회가 도출한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합의안을 시리아 정부가 이행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대지 미사일 공격과정에서 사린가스가 사용됐고, 화학무기가 사용된 8월 21일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에서는 공기의 움직임이 지상으로 향하고 있어 어린이 등 민간인들이 공격을 피해 숨은 지하실 등으로 사린가스가 쉽게 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일을 누가 저질렀는지는 보고서에 나오지 않았고, 반 총장도 언급하지 않았다. 애초 유엔의 조사 범위에 화학무기 사용주체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는 "알아사드 정권의 책임"이라며 시리아 정부를 압박했다. 미국 서맨사 파워 주유엔대사는 이날 "이렇게 대규모 화학무기 공격을 할 수 있는 곳은 알아사드 정권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리아 반군이 정부군 지배지역에 침투해 독가스 로켓을 발사했다'는 알아사드 정권 주장에 대해서도 "논리에 어긋난다"고 일축했다. 반면 시리아의 우방인 러시아는 "독가스 공격이 반군 소행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을 첫 시험대로 전망했다. 이 날은 미ㆍ러가 합의한 화학무기 해체 1단계에 따라 시리아가 화학무기금지협약 가입 1주 내로 보유 병기 명단을 내야 하는 기한이기 때문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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