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16일 국회 의원동산 내 사랑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3자 회담에선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파문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 민감한 현안들이 대화 테이블에 오르면서 시종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앞서 열린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설명회에서 국회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덕담을 나누고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 분위기를 띄우려 했던 노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사실 순방설명회에서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천막당사에서 한달 가까이….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란다"며 "내일 회갑을 맞는데 오늘 회담이 좋은 결과를 맺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신을 맞으셨으면 합니다"고 인사를 건네고 김 대표도 "고맙습니다"고 화답하면서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3자 회담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급랭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저도 야당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만 야당이나 여당이나 정치 목적이 같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야당이나 여당이나 무엇보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입장은 같다고 생각한다"며 회담의 화두가 '민생'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황 대표는 "오늘 만남이 단초가 돼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가슴을 열고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가 상례화됐으면 한다"며 "여야가 안보와 민생에 대한 정쟁을 중단하고 국회 안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선언이 있길 간곡히 바란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꺼내 들고 쟁점 현안을 일일이 거론하자 박 대통령은 김 대표의 '작심 발언'을 메모하며 경청했다. 김 대표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허무는 헌정유린 행위"라고 강조하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등 7개 항을 요구했고 국정원 개혁 제안서도 전달하자 박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졌다.
3자 회담은 당초 1시간으로 계획됐으나 예정시간을 넘겨 1시간30분간 진행되면서 회담장바깥에선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회담장 내부에서는 쌍방의 논박이 맹렬한 불꽃을 내며 가열되는 양상이었다. 국정원 이슈와 민생현안,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파문 등 핵심 쟁점에서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는 지루한 공방이 계속됐고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김 대표는 회담 뒤 "마지막쯤 가서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회담 결렬 분위기는 회담장을 나서는 박 대통령이나 김 대표의 굳은 얼굴에서 처음으로 감지됐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떠난 뒤 여야 대표간 별도의 회동을 가진 뒤 황 대표는 미소를 지었지만 김 대표의 얼굴에는 냉랭함이 지속됐다.
김 대표는 회담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할 말은 다 했다.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정답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히며 사실상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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