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질 당한 사람에게 돌팔매 한번 더 하는 거 아니다. 어렸을 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큰 말이 있다. "사람이 염치를 알아야지…" 염치를 모르면 사람 대접 못 받고 부모들까지 손가락질 당한다면서 어머니께서 늘 입에 달고 사신 말씀이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이어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변호사개업신청을 퇴짜맞았다. 서울서 변호사 개업하겠다며 지난 7월 입회서류를 냈는데 서울지변은 지난 헌재소장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비리와 잡음, 체신 떨어지는 추문 등을 들어 "자격에 문제가 있으니 석달쯤 자숙하시지요" 라면서 일단 돌려보냈단다.
허, 이거 참! 이동흡씨 입장에서 보자면 '시건방지고 황당한 일' 이었을 것이다. 나름 법조계의 '어른'이라고 생각해왔을 터이니 발끈했던 모양이다. 그가 보기에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후배 들이 감히 나한테 시건방지게 자숙을 요구해? 자숙요청 거절하고 서류를 계속 디밀었다. 그러자 서울지변은 지난 11일 정식으로 입회를 거절했다. "특정업무경비 유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철회를 권고했지만 불응했다. 공익 수호자로서 변호사 위상과 회원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청서 반려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에는 변호사등록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아 도덕성에 의문이 있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향후 회칙개정을 통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적극 거부하겠다"고 못을 쾅쾅 박아버렸다. 이어 다음날인 12일, 대한변협도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등록해야 하는 변호사법 절차상 불가"라며 최종 거부했다. 서울지변 후배 변호사들의 거절 사유는 사뭇 비장하고 준열하다. "비난받을 행동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헌재소장직을 포기했음에도 변호사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는 변호사직의 고귀한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일침을 놓았다. 네티즌들은 "이것이 바로 비정상의 정상화" "속 시원하다" 등의 댓글로 지지를 표명했다.
이동흡씨는 헌재 재직중 '특정업무경비' 전액을 개인통장에 넣어두고 자신의 생명보험료나 카드비, 경조사비는 물론, 외국에 사는 딸에게 보내는 쌈짓돈까지 곶감 빼먹듯 꺼내 썼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특정업무경비 3억2,000만원 횡령혐의로 이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수사중이다.
이동흡씨의 사례는 우리 사회 일부 지도층의 도덕성이 어느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이게 다 '염치'가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 치부가 미주알고주알 드러났으면 염치있게 처신해야 하건만 늘그막에 무슨 추태인가?
철들기 시작하면서 밥상머리에서 배웠던 염치를 잃어 패가망신하는 노추(老醜)가 어디 이동흡씨 한 사람 뿐이랴. 죄 값으로 당연히 냈어야 할 추징금을 십 수년간 미루고 버티다 자식들이 감옥 갈 처지에 놓이자 마지못해 내면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자진납부"라고 생색을 내질 않나, 통화 일시와 내용 등 구체적 정황증거 확실히 갖춰 일관되게 양심적 증언을 하는 부하 면전에서 "그런 일 없다"고 버젓이 잡아떼는 전직 경찰수뇌부를 보노라면 염치라는 단어 조차 사치스럽다.
염치의 범주로 넣기에는 파급력이 너무 큰데다 현재진행형인 정치 현안이어서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 지 알 수 없지만, 조선일보의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 '태도'도 근본적으로 염치없기는 마찬가지다. 혼외자를 낳았다고 지목된 여성이 지장까지 찍어가며 "아이 아버지는 총장이 아니다"는 편지를 공개적으로 보냈고, 총장은 "유전자검사 받겠다"며 사퇴하고 소송 낸다고 했으니 차분히 결과를 지켜볼 일인데, 총장과 그 여성에게 "억울하면 당신들이 입증하라"고 발뺌성 강요를 하는 건 취재보도에 관한 윤리‧준칙 이전에 우선 몰염치한 것 아닌가? 그 모자의 혈액형 같은 개인정보를 누가 어떻게 알아내 보도됐는지는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 일련의 과정에서 짓밟힌 그 모자의 인권과 상처는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청와대까지 들고 나선 정치적 사안이니 그 정도의 몰염치와 반인권은 허물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건가.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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