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채동욱 검찰총장을 사퇴시킬 목적으로 이른바 '채동욱 파일'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청와대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청와대 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어 향후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청와대, 5월부터 뒷조사 착수 의혹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16일 폭로한 내용의 골자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초 물러나면서 사찰 파일을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넘겨줬다는 것이다. 곽 전 수석은 서천호 국가정보원 2차장과 함께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한 사찰을 진행해 왔다는 내용도 있다.
또 검찰 출신인 이 비서관이 채 총장의 사찰 결과를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공유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박 의원이 이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혼외 아들 의혹을 첫 보도한 조선일보에 민정수석실이 도우미 역할을 했다는 점도 암시하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불법사찰 논란까지 일고 있는 채 총장의 사생활 관련 뒷조사를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것이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민정수석실의 개입 정황은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증언에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당국 인사는 "사정기관이 5월부터 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54)씨 및 임씨 아들이 다녔던 사립초등학교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해 7월에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뒷조사' 기관이 민정수석실인지 국가정보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청와대에 관련 사실이 보고된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정당국 인사는 "초등학교에서 임씨 아들의 아버지가 '채동욱'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이 사정기관에 첩보 형태로 입수돼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도 채 총장의 뒷조사에 민정수석실이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혼외아들 의혹 첫 보도가 나오기 3주 전쯤인 8월 중순 조선일보 부장급 인사가 검찰 간부를 만나 "채 총장이 여자문제로 곧 옷을 벗을 것이다. 조만간 새 총장이 취임할 것이고 검사장 인사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가 "곽상도 수석 작품인가"라고 묻자 부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검사들도 "이중희 비서관이 조선일보 보도 이전에 검사들에게 보도 예정사실을 알렸다"고 밝히고 있어 민정수석실이 채 총장 뒷조사에 관여한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민정수석실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불법사찰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직자가 아닌 임씨 아들의 학적부와 혈액형, 가족관계등록부 등 민간인 개인정보가 불법 수집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날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 과정에서 해당 아동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며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변회는 특히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통해 엄격히 관리돼야 할 개인정보가 유출된 데 대해 교육청은 감사를, 검찰은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 총장, 8월부터 인식한 듯
채 총장도 보도 이전에 이미 민정수석실이 자신을 뒷조사하고 있다고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8월 중순 조선일보 간부를 접촉했던 검찰 인사 및 이 비서관과 연락한 검사들로부터 관련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당시에도 혼외아들 의혹에 관해 '사실무근'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검찰 간부의 전언이다.
채 총장의 이 같은 기조는 그대로 이어져 지난 6일 조선일보 보도를 처음 접한 뒤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못마땅히 여긴 정권이 배후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홍경식 민정수석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만나서도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히는 등 시종일관 의혹을 일축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채 총장은 12일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 제기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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