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는 이명박정부 이후 검찰과 질긴 인연을 이어 가면서도 고비고비마다 법원의 무죄 판결로 기사회생을 거듭했다. 16일 '2차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항소심의 유죄 판결은 첫 '패배'인 셈이다. 한 전 총리로서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전 총리와 검찰의 악연은 2009년 말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출발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시 한 총리에게 5만달러를 건넸다고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는 검찰 수사를 통해 2009년 12월 재판에 회부됐다. 하지만 법원이 2010년 4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한 전 총리는 한 고비를 넘기는 듯했다.
검찰은 1심 판결 직전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이른바 '2차 사건'이다. 이로써 한 전 총리는 2건의 재판을 동시에 받는 이중의 시련에 빠졌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2011년 초 1차 사건 항소심 공판과 그해 10월 2차 사건 1심 판결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고 올해 3월에는 대법원에서 1차 사건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 전 총리는 오랜 법정 공방에서도 검찰의 칼날을 매번 피해 왔던 만큼 이날 판결에 큰 충격을 받은 듯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항소심 선고 이후 서초동 법원 청사를 나서며 "이명박정부에서 정치적 의도하에 만들어진 사건인데 이명박정부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며 "박근혜정부에서 유죄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당당하고 떳떳하고 결백하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상고심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상고 의사를 밝혔다.
한명숙 공동대책위원회도 이날 서울 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심에서 어떤 새로운 증거도 제출한 바 없고 오히려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시도하다 불가 판정까지 받았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대책위는 이어 "검찰조차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실들까지 외면하고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은 재판부가 결론을 정해 놓고 검찰 주장과 증거를 모두 끼워 맞췄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최근 공안정국과 무관치 않은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담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 전 총리의 재판 결과에 대해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추정에 근거해 유죄를 선고했다"며 '정보ㆍ공안정치'를 언급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번 판결은 법리와 사실관계에 기인하지 않은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대법원이 문제점들을 모두 바로잡아 진실을 밝혀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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