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妙手) 세 번 두면 바둑 진다'는 말이 있다. 묘수란 발상이 독특하여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묘한 수를 말한다. 죽을 것 같던 자신의 말(馬)을 살리기도 하고, 멀쩡해 보이던 상대 말을 죽이기도 한다. 특히 행마와 전술에서 묘수를 발견하게 되면 일거에 판세를 회복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다. 묘수는 상대가 정확한 수순(手順)에 따라 대응하더라도 그 효과가 반감되지 않는 정상적 수라는 점에서 암수(暗手)와는 다르다. 암수는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면 문제가 없지만 실수를 할 경우엔 사활과 전술에서 크게 낭패를 보게 되는 비정상적인 수, 일종의 꼼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권은 두 번의 큼직한 묘수를 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쟁점화가 첫 번째, 통합민주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적발이 두 번째라고 볼 수 있다. NLL 논란은 민주당의 주요 기반인 참여정부가 북한의 요구에 영합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묘수의 효과를 상당히 보았다. 다만 논란이 길어지면서 현 정부가 '전 정부가 NLL을 포기한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하고, 현 야당이 'NLL은 결코 포기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양상이 됐다. 결국 본말이 전도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묘수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 이후 수순은 유야무야 됐다.
내란음모 혐의 사건을 터뜨린 것도 분명 상대방이 예측할 수 없었던 기묘한 수였다. 국정원 개혁을 비롯한 여야의 대립 이슈를 모두 희석시켜 버렸다. 보수와 진보가 뚜렷이 이분화한 가운데 그 동안 공세를 취하고 있던 야권은 얼떨결에 '진보→종북→내란음모'의 분위기에 갇혀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 민주당은 마땅한 대응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고 결국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직 수순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묘수의 성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공개된 'RO 녹취록'만으로도 촛불시위를 일거에 잠재우는 등 그 효과를 기대 이상으로 거두었다.
두 번째 묘수가 진행중인 와중에 세 번째 묘수가 등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의혹-감찰-사퇴 파문이 또 한번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채 총장이 취임 이후 여러 차례 현 정권과 대립 각을 세웠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어서 보장된 임기에도 불구하고 공존하기 어렵다는 점은 누구나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수순이 진행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채 총장과 법무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3인은 이미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상황에 빠졌다.
프로기사들은 암수를 쓰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지만, 묘수를 찾아 둘 땐 보람으로 여긴다. 그런데 세 번의 묘수를 두게 되면 그 바둑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통용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묘수가 필요한 국면이라면 판세가 그만큼 불리하다는 반증이며, 더구나 잇달아 세 번씩 묘수를 찾아야 할 상황이라면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굳이 묘수만을 찾아 나선다면 분명 다른 곳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둑에서 전대미문의 승률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이창호 사범은 묘수를 거의 두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묘수를 찾아내 한 건 올리는 데 맛을 들이면 암수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줄기차게 이기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고,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고 따분하지만 정수(正手)가 최선이다"는 그의 충고는 바둑애호가만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니다.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1면 머리기사로 대문짝만하게 다룬 보도,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사찰 지시, 검찰총장의 즉각적인 사퇴 천명, 청와대의 사퇴 불수용 발표 등은 한결같이 발상이 독특하여 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기묘한 수가 분명하다. 묘수가 묘수를 부르고 있는 국면인데, 어느 것이 '묘수 같은 암수'이고, 어느 것이 '암수 같은 묘수'인지 분간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 정수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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