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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제작자 시대가 갔다고? 천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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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제작자 시대가 갔다고? 천만에요"

입력
2013.09.1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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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이춘연투자자·배우보다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 '황진이' 흥행참패 딛고 와신상담영상세대인 중년관객이 중요한 타깃

'숨바꼭질' 김미희다른 회사서 퇴짜맞은 시나리오로 대박 '페이스 메이커' 저조한 흥행 예상 밖요즘 관객들 영화 한 편에 만족못해

지난 여름 충무로는 뜨거웠다. 한국 영화 4편이 화끈한 흥행 레이스를 펼치며 폭염을 무색하게 했다. 두 편의 영화가 극장가를 선도하는 '쌍끌이 흥행'을 넘어 '더블 쌍끌이 흥행'이란 조어까지 나왔다. 지난 8월 한국 영화 관객은 2,195만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흥행 용광로의 중심에 있던 영화 중 '더 테러 라이브'(557만명)와 '숨바꼭질'(558만명ㆍ이상 15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김병우 허정 등 신진 감독들이 충무로의 안일함을 떨쳐내며 흥행 불쏘시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젊은 감독들의 패기 어린 성취 뒤엔 노련한 제작자의 후원이 있었다. 이춘연 씨네2000 대표와 김미희 스튜디오 드림캡쳐 대표가 올 여름 가장 주목 받은 젊은 감독들의 조력자다. '더 테러 라이브'의 이 대표는 20년 동안 '여고괴담'시리즈와 '황진이' 등을 만들었으며 '숨바꼭질'의 김 대표는 '혈의 누'와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을 제작했다. 1983년과 1989년 각각 충무로에 발을 들인 백전 노장들이 충무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을 12일과 13일 각각 만나 여름 흥행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자리를 따로 했지만 두 사람은 입을 맞춘 듯 영화에 대한 엇비슷한 신념을 밝혔고 비슷한 관점에서 한국 영화계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두 사람은 올 여름 흥행작의 시나리오를 운명처럼 만났다. 이 대표는 3년 전 "잘 좀 써봐"라고 아들 친구인 김병우 감독을 가볍게 야단이나 칠 작정으로 읽으려다 '더 테러 라이브'와 마주했다. 김 대표는 '페이스 메이커' 후반 작업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가 덕에 '숨바꼭질'과 대면했다. 어느 영화사로부터 이미 퇴짜를 맞은 시나리오였다. '영화는 모두 각자의 임자가 따로 있다'는 영화계 속설을 재확인한 셈. 어느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에서 자신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미술관 옆 동물원'을 결국 이 대표가 제작하고, 돌고 돌던 시나리오가 김 대표에게 의해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대박 영화로 환골탈태했던 것처럼.

흥행 비결을 물으라치니 두 사람은 제작자로서의 기본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투자자나 배우 만나는 것보다 결국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고, 김 대표는 "시나리오의 첫 느낌을 우선한다"고 했다. 촬영 현장을 자주 찾아 문제점을 바로 해결하려 하고 촬영 전 감독과 영화에 대한 조율을 다 끝내는 건 두 사람의 공통된 제작 스타일이다.

충무로에서 이름난 제작자들이지만 두 사람이 흥행의 꿀맛만 본건 아니다. 이 대표는 대작 사극 '황진이'로 흥행 참패를 경험했고, 김 대표는 '페이스 메이커' 때문에 와신상담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충무로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의 경험은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도 무시하지 못한다. 덕분에 "신진 감독이나 신참 프로듀서들이 마음 든든히 먹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패막이 역할"(이 대표)을 하고 "젊은 감독들에게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김 대표) 위치에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두 사람은 주로 신인 감독들과 작업하며 재능 있는 인력들을 극장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민규동 감독, '만추'의 김태용 감독 등이 이 대표의 영화사를 거쳐 충무로에 진출했고,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과 '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김 대표와 호흡을 맞추며 영화 이력을 쌓았다. "신인들은 의욕이 넘친다"(이 대표)와 "좋은 감독을 발굴한다는 재미"(김 대표)가 신진들과 작업하는 이유다.

역전의 충무로 용사들이지만 이 대표는 "관객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했고, 김 대표는 "'페이스 메이커'의 저조한 흥행 결과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은 올 여름 한국 영화의 초강세에 대해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요즘 중년들은 영상 세대다. 예전엔 10대 20대가 주 타깃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이 대표) "특색 있는 영화들이 나왔고 요즘 관객들은 영화 한 편에 만족하지 않는다. 너무 더운 날씨도 한 몫 했다."(김 대표)

두 제작자는 돈에 물든 충무로의 세태를 우려했다. 특히 "제작자 시대는 갔다"는 식의 제작자 역할 축소론을 강하게 경계했다. 이 대표는 "한국 영화가 산업화 된 뒤 다들 감독이나 배우만 있으면 영화가 되는 줄 안다. 제작자의 전문성을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성토했고, 김 대표는 "예전엔 제작자와 감독, 작가의 파트너십이 중요했는데 지금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다"고 비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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