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초록 봉황을 17년 만에 품었다. 1996년 봉황대기 우승, 1999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전국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잃어버린 10여 년의 시간을 올해 41회 봉황대기 우승으로 되찾았다.
그 중심엔 오합지졸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든 쌍방울 출신의 석수철(40) 감독이 있었다. 2011년 말 모교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전전긍긍하던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군산상고의 우승, '석수철 매직'이었다.
석 감독은 16일 "역시 야구는 이기고 봐야 할 일"이라며 "전날 선수단 버스에 우승 플래카드를 달고 군산 톨게이트부터 시내까지 경찰 호위를 받는데 정말 감격스러웠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박성현 총동문회장과 문태환 군산시야구협회장, 진창엽 교장선생님, 나창기 호원대 감독님, 학부모, 군산시민 모두가 합작한 결과물"이라며 "이번 우승을 계기로 어떤 팀도 쉽게 우리를 넘볼 수 없는 탄탄한 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군산 홈에서 치른 예선 부담과 책임감 교차
41회 봉황대기는 예선부터 16강전까지 군산월명야구장과 청주야구장에서 나뉘어 진행됐다. 군산상고로써는 안방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조기 탈락하면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석 감독은 "군산에서 경기하는 동안 큰 부담과 책임감이 교차했다"면서 "우리의 우선 목표는 8강에 올라 서울(목동야구장)로 넘어가자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안방에서 3연승을 거두고 8강에 오른 군산상고는 일단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올 시즌 전국 대회 첫 8강 진출을 이루고 나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가장 껄끄럽게 여겼던 8강에서 동산고를 잡더니 순풍에 돛단 듯 용마고, 마산고를 차례로 꺾고 우승했다. 석 감독은 "동산고와의 경기가 가장 큰 고비였는데 조현명이 완봉 역투를 해줬다"면서 "3학년 현명이가 후배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 간다"고 말했다.
쌍방울 기대주, 부상 탓에 조기 은퇴… 지도자로 성공할 것 독기
국가대표팀 출신 석 감독은 현역 시절 신인 1차 지명으로 1996년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근식 지옥 훈련'을 이겨내고 주전 3루 자리를 꿰차 쌍방울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밑거름이 됐다. 그 해 성적은 114경기에 나가 타율 2할6푼6리 3홈런 32타점.
신인 첫 해부터 가능성을 보였던 석 감독은 그러나 이듬해 고관절 수술로 단 한 차례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은퇴하는 불운을 맞았다. 일찍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독기를 품었다. "어차피 빨리 은퇴했으니 나중엔 지도자로 또래 선수들보다 더 잘 된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마 야구에서부터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성균관대 코치를 11년 하는 동안 많은 우승, 준우승을 이뤄내며 '이기는 야구'를 배웠다. 이러한 경험이 군산상고를 부임 2년 만에 우승까지 이끈 밑거름이 됐다."
김성근의 아이들, 지도자-스카우트로 승승장구
석 감독은 프로 선수로선 고작 2년 밖에 뛰지 못했지만 당시 김성근 쌍방울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2001년부터는 쌍방울 출신 이연수 성균관대 감독 아래서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석 감독은 "생각해보니 쌍방울 출신 지도자와 스카우트가 많다"고 했다.
김기태 LG 감독을 비롯해 김현욱 삼성 코치, 최태원 LG 코치, 조원우 롯데 코치 등이 있고, 각 팀 스카우트와 아마 야구 지도자 자리에도 포진해 있다. 석 감독은 "훈련량이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엄청 많았다. 훈련할 때는 힘들지만 시즌을 치르다 보면 고생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야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면 야구 보는 시야도 트인다. 또 이기는 야구에 익숙해지면서 그 전략을 떠올리며 활용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석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프로 구단 지도자다. 그 전에 모교인 군산상고를 전국 최강 팀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석 감독은 "역전의 명수라는 타이틀을 살리려고 개인 시간도 반납하고 팀만 바라봤다"면서 "내 모든 역량을 모교에 쏟아 부은 후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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