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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9억 건넸다는 진술 신빙성"… 유일한 증거 놓고 1심과 정반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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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9억 건넸다는 진술 신빙성"… 유일한 증거 놓고 1심과 정반대 판단

입력
2013.09.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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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줬다는 공여자의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인 상황에서 검찰과 다섯 차례 '진실게임'을 벌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4연승 끝에 1패를 했다. 성격이 비슷한 2개의 사건과 관련, 4번의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이끌어 낸 한 전 총리는 16일 처음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줄곧 묵비권을 행사한 한 전 총리의 전략도 깨졌다.

16일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판결이 뒤집힌 것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검찰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1,2심 재판부가 각기 다르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에게 직접 9억원을 건넸다"는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였지만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해 미궁에 빠졌다.

1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에 주목했다. 먼저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동기가 불순하다고 봤다. 한 전 총리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한 전 대표가 폭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또 검찰이 자신을 횡령죄로 추가 기소할 것을 우려해 검찰이 원하는 대로 허위 진술했을 여지도 있다고 봤다.

1심은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인지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두 사람은 2003년부터 두어 번 만났을 뿐 한 전 총리의 부탁을 받아 자택에 직접 돈을 가져다 줄 정도의 친분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받아 휴대폰에 입력한 시기인 2007년 8월이 처음 돈을 건넸다는 시점보다 5개월이나 뒤라는 점도 무죄 심증을 굳혔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이 지적했던 진술의 신빙성 저하 요인들을 하나하나 반박한 결과,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유죄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심은 한 전 대표가 아무리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없는 말을 지어내 주지도 않은 3억원의 반환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또 한 전 대표가 9억원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검찰이 횡령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추가기소가 두려워 거짓 진술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둘의 친분 관계에 대해서도 이들이 청주 한씨 종친 관계인 점 등에 비춰 정치자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라고 봤다. 전화번호 입력 시기에 대해서도 2심은"한 전 대표는 자신이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한 시기에 대해 검찰에서 정확히 진술한 바 없다"며 1심이 오히려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앞서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 명목으로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2009년 기소됐으나 1, 2, 3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에도 유일한 증거는 곽 전 사장의 진술뿐이었으며 재판부는 "진술의 일관성, 합리성 등에 비춰 곽영욱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나머지 정황증거만으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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