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의 시계(視界)도 흐려졌다. 사실상 사퇴를 강요한 법무부의 감찰 지시에 '청와대의 뜻'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 이번 사태가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박은재 대검 미래기획단장이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이건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법원의 소신 있는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냐"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일 검찰 안팎에서는 '포스트 채동욱' 체제가 검찰의 독립적인 공소 유지가 가능하도록 '정치적 외풍'을 막아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이 채 총장 사퇴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 의혹이 제기된 이상, 누가 차기 총장이 되더라도 정권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수부 출신의 한 부장검사는 "(총장이 바뀌었다고) 이미 제기된 공소사실의 틀을 뒤집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다만 신임 총장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는 것을 막거나 (정권을 의식해) 구형량을 조절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지난해 12월 11~16일 국정원과 여권 실세, 경찰 수뇌부의 집중 통화내역을 비롯해 원 전 원장의 혐의를 밝힐 추가 증거들을 공판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유죄 입증의 책임은 오로지 검찰에게 있어 검찰이 적극적으로 공소사실을 입증하지 않을 경우, 판사는 유죄 심증을 갖고 있더라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한 형사단독판사는 "소신 있는 형사 판결은 혐의 입증을 위한 검찰의 집요함과 피고 측 변호인의 논리적 방어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며 "현 상황에서 어떤 검사가 집요하게 국정원 사건에 덤벼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내년 2월로 예정된 법원의 정기 승진인사를 앞두고 재판부가 느낄 수 있는 심적 부담에 주목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형 공안 사건의 처리 결과에 따라 (해당 재판부의) 승진 시기가 당겨지거나 늦춰진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법관도 사람인지라 검찰총장이 사퇴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아무래도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법 논리로 (사안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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