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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9월 16일]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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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9월 16일] 네 가지

입력
2013.09.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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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스테판슨이라는 SF작가가 약 20년 전에 쓴 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확실히 언제라고 밝히고 있진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혹은 20년 후쯤 되지 않을까 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미국은 망했다.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의 우위를 누리지 못한다. 이를테면 자동차는 미국보다 파키스탄이 더 잘 만든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잘하는게 네 가지 있다. 음악, 영화, 마이크로 코드. 그리고 네 번째는 피자 배달. '마이크로 코드'란 무엇인가? 직역하면 매우 작은 프로그램, 그러니까 요즘 용어로 재해석하면 모바일 기기에서 작동하는 어플 정도가 되겠다. 미래 경쟁력은 음악, 영화와 같은 문화콘텐츠, 앱과 같은 기술기반 콘텐츠, 그리고 이 소설에서 피자 배달로 대변한 서비스 산업, 특히 고객 개인 맞춤형 서비스 산업에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기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다. 만일 이 작가가 우리나라에 와서 짜장면 배달하는 걸 봤다면 그 신속함과 정확함,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함에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가는 미래의 경쟁력은 문화에 기반한 콘텐츠, 과학기술에 기반한 콘텐츠, 그리고 서비스 산업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들에 기반한 산업과 경제를 요즘 말로 뭐라고 하나? 바로 창조산업, 창조경제이다.

영국은 일찍이 콘텐츠와 서비스에 기반한 산업의 중요성을 알아 차리고 이들 산업에 멋있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바로 '창조산업'이다. 얼마전 영국에서 온 전문가를 만난 자리에서 도대체 어떻게 창조산업이란 개념을 정부차원에서 정책화했는가 물었더니 영국 정부가 자국의 어떤 전문가의 권유를 받고 이 개념을 과감히 도입해 정책의 기조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에도 보수와 진보, 논리와 감성, 과학과 문화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영국적 문화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창조산업의 하이라이트는 개인의 지식과 탤런트를 원천으로 해서 여기서부터 만들어지는 지식재산권을 활용, 부와 일거리를 창조하는 산업이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과 '지식재산권'이라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잘 길들여진 양질의 집단 인력이나 풍부한 자원, 거대 자본이 경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은 그렇다치고 지식재산권이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은 지식재산권이 무엇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고, 사회적 합의도 충분치 않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거라는 거다. 과학과 예술 관점에서 보자. 두 분야의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는 두 분야 모두 고도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과학의 결과물로는 논문과 특허가 있고, 예술 쪽에서는 그림, 음악, 소설 등이 있다. 약간 어정쩡한 회색지대에 소프트웨어나 영화가 있는데, 이들의 권리는 저작권이라고 하는 약간 애매모호한 권리로서 보호받는다. 이들 모두 내가 만든 것은 악착같이 그 권리를 보호받으려고 하고 남이 만든 것은 적당히 기회봐서 가져다 쓰려고 하는 분야이다. 소프트웨어와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만드는 종합기술이고 종합예술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이 뒤범벅이 된 대표적인 융합물이다. 무엇보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산물이니 앞서 지적한대로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다.

다시 스노우 크래쉬로 돌아가자.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피자 배달부이자 프로그래머이자 그 자신 걸어 다니는 개인기업이다. 어쩌면 창조경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상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물상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글쎄, 모험가라는 표현을 어떨까?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다, 혹은 오지와 같은 물리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아니라 지식의 세계, 정보의 세계, 인간들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모험가 말이다. 이 시대는 이런 모험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할 일은 모험가들이 모험을 할 수 있는 환경과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원광연 (KAIST 문화기 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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