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파문과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는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검찰청 일부 간부들이 항의 표시로 사표를 내거나 황 장관의 공식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서울서부지검이 첫 발을 뗀 평검사회의 등 일선 검사들의 반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은재 대검 미래기획단장은 14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황 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해 "조직의 불안과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구요? 검찰총장의 언론보도정정청구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님의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단장은 이어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 훼손문제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셨습니까? 이건 검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황 장관을 직접 겨냥했다.
사의를 표명한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도 같은 날 글을 올려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는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고 거친 언사로 황 장관을 비난했다. 그는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며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라고 사직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ㆍ독립성이 훼손된 데 대해 황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검찰 내부의 신망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언론의 의혹 제기, 장관의 감찰 지시, 총장 사퇴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것"이라며 "황 장관이 청와대의 압력을 직접 막던가, 그럴 힘이 없어 채 총장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자기도 같이 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다른 검사도 "감찰관이 해외출장을 나가있었던 점 등에 비춰보면 법무부가 발표에 앞서 감찰을 정교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며 "그야말로 망신을 줘서 나가란 것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데 법무부가 정치권의 외압에서 검찰의 독립을 막아줄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법무부가 사표 수리 전까지 감찰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총장을 사지로 내몰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앞뒤 맞지 않는 얘길 하는 장관을 누가 따르겠나"라며 "장관은 현재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했다.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감찰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든 아니든 사생활 문제로 총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의 검찰 흔들기일 뿐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대체적 인식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사실이라고 해도 사람을 그렇게 욕보이게 해서 내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 검사는 "검찰의 일원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며 "더는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13일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은 검사회의를 열어 "채 총장의 중도사퇴는 재고돼야 한다"고 중지를 모았다. 하지만 15일 청와대가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며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보류하자 검찰 내부는 일단 지켜보며 집단행동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등 전국 각 지검의 평검사들은 이날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검사회의 개최 여부와 시점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논의의 중심은 부부장 검사 이하 수석급인 사법연수원 30기 출신의 평검사들이다. 서울북부지검, 창원지검, 수원지검, 부산지검 평검사들은 이날 오후 예정됐던 검사회의 개최 일정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향후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행동하겠다는 뜻으로, 법무부와 청와대 등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언제든 '검란 (檢亂)'사태로 비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 간부급 검사는 "뜻 있는 검사들 가운데 '조직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위 아래가 뭐가 맞아야 일을 할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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