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김영준 해설위원의 '저 선수 빠떼루(벌칙 이름) 줘야 함다!'라는 멘트가 대중에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국내 레슬링인들은 가끔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레슬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기사회생했다. 레슬링은 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야구ㆍ소프트볼, 스쿼시를 제치고 2020년 도쿄 올림픽 28개 종목에 포함됐다. 지난 2월 IOC 집행위원회에서 핵심종목에서 제외돼 벼랑 끝에 몰렸던 레슬링은 뼈아픈 자기 혁신 끝에 올림픽 정식종목의 지위를 되찾았다.
고대 올림픽을 포함 3,0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레슬링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레슬링은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근력만으로 경쟁하는 올림픽의 상징 종목이었다. 결과적으로 레슬링의 핵심종목 제외는 대중적인 인기도와 TV중계 등 상업주의에 매몰돼 가던 IOC의 성급한 결정이 잘못됐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물론 레슬링계의 안일한 대응과 난해한 경기방식 등이 퇴출 위기의 빌미로 작용했다. 하지만 무능했던 전임 회장을 퇴출시키고 여성 부회장 신설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한 결과 정식 종목으로 살아 남게 됐다.
우리 나라의 잣대로 보면 올림픽 28개 종목 중 대부분이 비인기 종목이거나 소외종목이다. 스포츠도 시대의 흐름이 있다. 70~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복싱과 프로레슬링이 단적인 예다. 아마추어 레슬링과 복싱도 마찬가지다. 헝그리 스포츠인 데다 레슬링 하면 찌그러진 귀와 퉁퉁 부어 오른 눈두덩이 연상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면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점점 저변도 축소되고 골프나 야구 등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대중적 인기도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야구를 봐도 그렇다. 야구는 지구촌에서 축구처럼 많은 나라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기는 못지 않다. 이번에 야구는 소프트볼과 통합해 재입성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메이저리그의 비협조적 자세가 결정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림픽을 위해 리그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연히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는 일반론에 반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레슬링 퇴출 위기의 여파는 다른 국가보다 훨씬 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정부수립 이후 첫 금메달을 따낸 데다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11개의 금메달을 수확한 효자종목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되면 레슬링 인구의 저변 축소는 불을 보듯 뻔했다.
IOC는 올림픽 하계 종목을 28개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이번에 떨어진 야구ㆍ소프트볼, 스쿼시 등 다른 종목들은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 위해 앞으로도 재도전할 전망이다. 레슬링이 이번에 우여곡절 끝에 정식종목 자리를 되찾았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국기인 태권도도 마찬가지다. 레슬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태권도도 지난 2월 IOC 집행위원회에서 핵심 종목 제외 후보에 올랐다는 것을 감안할 때 향후 공정한 판정, 재미 있는 경기 운영 등으로 중단 없는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이번 레슬링의 사례에서 영구종목은 없다는 것을 교훈으로 얻어야 한다.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되면서 한국 레슬링은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지난 30년간 레슬링을 후원했던 삼성이 최근 지원 중단을 결정함에 따라 스폰서 유치가 시급한 과제다. 또 최근 부진한 국제무대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경기력 강화에도 힘써야 한다. 한국 레슬링은 99년 터키 세계선수권에서 자유형(1개)과 그레코로만형(2개)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후 14년 째 노 골드에 그치고 있다. 16일부터 열리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가 그 첫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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