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영화에 대해 시비하는 건 아님을 밝힌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이제는 아주 희귀한 일도 아니다. 그만큼 영화의 내용과 질이 좋기 때문일 것이고, 그 점은 상찬할 일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면도 있다. 뜻밖에도 불경기 때 이런 영화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경기가 나빠지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먼저 문화비부터 줄인다. 책도 덜 사고 음악회도 안 간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영화다. 그마저도 포기하면 자신은 문화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만원으로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지갑이 얇아지니 여러 영화 다 볼 수는 없고, 선택과 집중으로 효용을 높이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서 1,000만 관객 동원 영화가 나오면 다른 영화는 기를 펴지 못한다. 경쟁에서 밀려서가 아니라 지갑의 선택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라는 영화가 자못 기세등등하다. 관객마다 평가와 호오가 다르지만 1,000만에 이른다. 덩달아 원작인 만화도 제법 팔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책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듯하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출판사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 그 책이 처음 번역된 게 2004년이다. 봉준호 감독이 만화책을 보고 영화를 결심했던 건 바로 그 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그 책의 출판사는 다른 곳이었다.
는 그 책을 처음 출간한 출판사의 대표가 프랑스에 직접 가서 책을 꼼꼼히 살펴보며 골라서 계약한 책이었단다. 미학을 전공하고 만화에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는 그가 골라온 만화책은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수준이 높다고 여겼는지, 가난한 출판사의 마케팅 여력 부족 때문이었는지 초판조차 소화하지 못했단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2009년, 그러니까 계약 만료 직전에 합본으로 다시 세상에 내놨다. 물론 반응은 별로였다. 자연히 재쇄 찍을 일이 없으니 프랑스의 출판사와 원작자에게 계약을 갱신하자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어느 정도 티켓파워가 있는 감독과 제작사였으며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했다. 그래서 얼른 에이전트와 프랑스 출판사와 선을 대 판권을 사들였다고 들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형출판사의 자회사이다. 물론 출판도 시장원리와 정보를 외면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상도의는 있어야 한다. 그게 문화와 시장의 차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화산업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직접 프랑스 서점 누비며 찾아낸 출판사에 계약 시효 지났지만 최소한 귀띔을 해주거나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게 의무도 아니고 안 한다고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출판 마당에서 어렵사리 인문과 예술의 좋은 책 꾸려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작은 출판사의 목을 조르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도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자신에게 영감을 준 그 책을 만나게 해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그 출판사에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는 함께 멸망의 배에 오르고서도, 공동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자기 앞만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럼에도 세상이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는 희망을 찾아낸다. 그런 영화를 만들면서 정작 그 책을 펴낸 거대 출판사는 남이 뿌린 씨앗을 제 밭에 옮겨(물론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결실을 거두고 있다. 그 결실이 처음 그 책을 옮기고 소개한 작은 출판사에게로 갔다면 잠깐 숨은 돌릴 수 있는 고마운 여유가 되었을 것이다. 대형출판사가 약자를 끝 칸에 내모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먼저 되돌아볼 일이다.
너, 나 없이 어렵다. 갈수록 출판계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서로 살아날 방책을 세우는 처지에 남 생각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정도가 있고 예의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명색이 문화계에서는 때론 그런 자잘한 일은 멋지게 양보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게 그 책의 메시지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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