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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취수장 폐허에 예술이 돋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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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취수장 폐허에 예술이 돋아나다

입력
2013.09.1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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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간에 한 줌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1976년 이후 30년 넘게 가동하다 지난 2011년 공식적으로 기능을 다 하고 문을 닫은 서울 구의취수장. 한강에서 끌어온 물에 염소(Cl)를 집어넣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수를 만들던 이곳이 2015년부터 공연예술가들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 겸 거리예술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구의취수장은 서울 광나루에서 구리시 방향으로 가다 워커힐호텔 즈음해 보이는 가파른 진입로 끝 한강변에 있다. 1만7,838㎡의 넓은 터에 이미 2008년 상주 직원들이 떠나버린 13평형 10개 가구의 주거동과 18m 높이 취수장 건물이 음산하게 서 있다. 여기에 다시 인기척이 돋아난 것은 올해 6월부터다. 서울문화재단이 강북취수장이 생기면서 문을 닫은 이곳을 거리예술 베이스캠프로 육성하기로 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3개월여 동안 이곳을 둥지 삼아 공연 작품을 만들고 연습해 온 9개 단체가 13~15일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통해 신작 6편을 선보인다. 구의취수장 건물 안과 밖 곳곳이 무대이고 전시장이다.

행사에 앞서 12일 해거름에 찾아간 구의취수장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버려진 공간이 풍기는 삭막함과 공포스러움이 신진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작품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내뿜었다.

취수장 메인 건물 출입구 문이 조용히 열리며 시작되는 아티스트 그룹 '노니'의 공연 '더 템페스트'는 건물 지하와 실내 공간을 이동하며 펼쳐지는 작품.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곡에 등장하는 프로스페로의 섬에라도 들어선 듯 관객을 이리 저리 이끈다.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취수시설 위에 놓인 메트로놈,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지하 통로, 그리고 미로의 끝으로 안내하듯 바닥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머리카락과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이 눈길을 잡는다. 깜깜한 실내 통로를 오가다 탁 트인 제 1취수장 본관(2,080㎡)에 닿으면 10여명의 배우들이 북 등 타악기와 각종 디지털 사운드, 현란한 조명을 배경으로 취수 시설들을 누비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벽과 공중을 잇는 구조물들을 타고 넘는 배우들의 파쿠르(Parkourㆍ도시 공간 속 장애물을 맨몸으로 오르내리는 기술. 일명 '야마카시'로 알려져 있다) 연기는 버려진 취수장 공간이 주는 다소 위험한 분위기와 어울려 긴장감을 더한다.

서울시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 이후 보강이 필요한 부분을 점검한다. 예산 26억원을 들여 2015년까지 접근시설 및 제작, 문화, 휴식공간 그리고 공연 공간을 단계적으로 조성, 오픈할 계획이다. 아직 일부 가동 중인 제2 취수장 건물도 추가 공간으로 활용한다. 건물 외벽과 어수선한 주변 경관은 폐공간의 낡은 느낌과 독특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손대지 않을 방침이다.

버려진 시설을 공연장 등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유럽에선 이미 오래 전 자리잡았다. 프랑스 살롱시는 문 닫은 도축장을 거리예술지원센터로 바꿨고, 독일 베를린은 영화촬영소를 복합예술지원센터와 공연시설로 재활용해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서울시도 장기적으로 각종 폐공간을 공연 관련 시설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아직 적합한 시설을 찾지는 못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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