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당한 노숙인을 혹한의 날씨에 역 밖으로 쫓아내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서울역 직원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착한 행동을 도덕이 아닌 법으로 강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3일 유기죄로 기소된 한국철도공사 서울역 직원 박모(47)씨와 서울역무실 공익근무요원 김모(3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역 역무과장이던 박씨는 2010년 1월 오전 7시쯤 역 순찰을 돌다 2층 대합실 근처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 A(당시 44세)씨를 발견했다. 박씨는 공익요원에게 "노숙자를 밖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고, A씨는 바깥 기온이 영하 6.5도였던 서울역 출구 밖 대리석 바닥으로 옮겨졌다. 또다른 공익요원 김씨는 이후 A씨의 상태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A씨를 데리고 다니다가 역 부근에 방치했다.
갈비뼈가 부러진데다 술에 만취해 혼자 움직일 수 없었던 A씨는 그날 정오쯤 흉부 고도손상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박씨 등이 법률상 구조 의무를 저버리고 장씨를 유기했다며 형법상 유기죄(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법률상ㆍ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가 그들을 유기한 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철도 종사자에게 법률상 구조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철도안전법 1조는 누구든 역 시설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어 철도 종사자는 금지 행위를 한 자나 물건을 퇴거시킬 수 있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국가, 미국 30여개 주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도입했거나 유사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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