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전격 제안한 여야 대표와의 '국회 3자 회담'은 사실상 지난 일주일여간 당청 핵심인사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대치 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그 부담을 청와대와 여당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당청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핵심 인사들은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출국일인 4일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에게 만남을 제안할 수 있도록 사전 정지작업을 해왔다. 새누리당에선 친박계 코어그룹에 속하는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나섰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순방길에 오른 이튿날인 5일 밤 예고 없이 민주당 천막당사를 찾아 김한길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최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치를 비판하는 김 대표에게 " '나는 예스맨이 아니다'"며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최 원내대표와 윤 수석부대표는 역할분담을 통해 청와대 설득에 나섰다. 최 원내대표는 야당 지도부와 함께 새누리당 원로ㆍ중진들의 의견을 고루 수렴한 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비롯한 실무진 설득을 맡았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가 참여하는 5자 회담을 선호하는 청와대의 기류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란 판단에서였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에 최 원내대표와 윤 원내수석부대표가 청와대 인사들과 통화한 횟수만 100통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주말을 전후해 청와대의 기류도 3자 회담을 수용하는 쪽으로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3자 회담을 제안했다가 힘이 빠진 듯했던 황우여 대표도 지난 주말을 지나며 민주당 김 대표와의 물밑 접촉을 재개했다고 한다.
당청 연결 과정에 '정치 신인'인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론도 거론되고 있다. 박 수석은 지난 6일 여야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 각 당의 입장을 청취한 뒤 이를 김 실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앞서 4일에는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 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등 여야 의원들을 가리지 않고 두루 만났다. 박 수석의 외교부 근무 시절 인연을 맺은 한 민주당 의원은 "박 수석이 조금 낯을 가리는 편인데도 이번엔 좀 달라 보였다"면서 "청와대에서도 부담이 꽤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 3자 회담 제안일을 귀국 이튿날로 잡은 건 최 원내대표와 김 실장이 의기투합한 결과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야당이 공세를 펼 게 뻔했던 만큼 가급적 빨리 제안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청와대 초청 대신 국회 방문 형식을 제안한 것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다"고 말했다. 5선인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회를 멀리했던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반면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김 실장의 아이디어로 알고있다"며 "청와대 참모들 입장에서는 청와대에서 야당 대표로부터 국정원 개혁 관련한 얘기가 나오면 불필요한 억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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