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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불모지에 묘목 심고 키운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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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불모지에 묘목 심고 키운 '백두대간'

입력
2013.09.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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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종로1가에 위치한 영화관 코아아트홀에선 작은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그해 2월 25일 개봉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명작 '희생'이 10만 관객을 모았다. 몸을 몇 번 뒤척일 때에야 장면 전환이 이뤄지는, 호흡이 지극히 느린 작품들로 유명한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흥행 성공은 한국 영화계에 일대사건이었다. '희생'의 성공은 예술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을 바꿔놓았고, 예술영화의 시장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희생'은 1990년대 예술영화 붐의 신호탄이었다.

'희생'의 수입사는 1994년 이광모 감독이 설립한 백두대간이었다. 백두대간은 1993년 11월 활동을 시작한 한국예술영화센터가 모체다. 백두대간은 '희생' 외에도 '타인의 취향' '브로크백 마운틴' 등을 소개하며 예술영화의 문을 열었고 한국 영화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런 백두대간이 지난 10일 공식 설립 20년을 맞았다. 한국예술영화센터 활동까지 합치면 만 20년 동안 국내 예술영화를 위해 매진해온 것이다.

백두대간의 역사는 국내 예술영화의 역사다. 백두대간이 수입 배급한 영화들은 1990년대 초반까진 영화 서적의 사진 몇 장으로만 겨우 접할 수 있던 명작들이다. 1983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와 '붉은 시편'(감독 미클로시 얀초) '천국보다 낯선'(감독 짐 자무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 '이레이저 헤드'(감독 데이비드 린치) '쥴 앤 짐'(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이 백두대간의 소개로 국내 관객과 첫 만남을 가졌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존재를 알린 것도 백두대간이다. 그렇게 국내에 소개한 영화가 120여편이다. 전찬일 아시안필름마켓 부위원장은 "'희생'의 흥행 성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백두대간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기기 전 해외 유명 예술영화를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며 예술영화의 흐름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백두대간의 지난 시간은 국내 예술영화관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울 혜화동 둥숭아트센터 안에 있었던 국내 첫 예술영화관 동숭아트 씨네마텍을 기획 운영하며 '아트하우스'의 개념을 알렸다. 영화 상영과 함께 영화 강좌를 열어 예술영화의 저변 확대를 도모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진 신문로 씨네큐브 광화문을 운영해 예술영화관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씨네큐브 광화문 시절 백두대간은 현대 일본 예술영화의 간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를 첫 소개했다. 2006년 백두대간이 수입한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37만 관객이 찾아 당시 예술영화로서는 블록버스터급 흥행 성과를 올렸다. 2009년 이화여대 교정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로 둥지를 옮긴 뒤에도 잉그마르 베리만 특별전을 개최하는 등 독창적인 예술영화관으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백두대간은 1998년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아름다운 시절'(감독 이광모)을 만들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백두대간의 화려한 이력 뒤엔 쓰라린 불운도 있었다. 국내 예술영화의 선구자로서 영화 문화의 지형을 새로 그려왔지만 세파와 시장의 풍랑은 거셌다. 의욕적으로 수입 배급한 영화들의 흥행 부진이 가랑비에 옷 젖듯 경영을 압박했다. 의도치 않게 동숭 씨네마텍에서 씨네큐브로, 다시 아트하우스 모모로 활동 근거지를 옮겨 다니며 설움을 맛봐야 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백두대간은 한국 영화산업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해온 곳이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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