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큰 누나 집에서 이모(27)씨는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이씨의 큰 누나와 어머니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숨을 거뒀다. 이씨의 범행은 "자신을 죽여달라"는 아버지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병원에서 뇌종양 말기 판정과 함께 "길어야 8개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장기간 입원하기에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이씨의 아버지는 통원 치료만 받으며 수시로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을 버텨야 했다.
치료비 부담과 고통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함께 살던 이씨의 큰 누나에게 수 차례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던 큰 누나는 동생 이씨를 불러 세 차례나 설득한 끝에 아버지의 부탁을 실행하도록 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자연사한 것처럼 꾸며 장례까지 마쳤지만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이씨는 지난 11일 오후 10시 30분쯤 술에 취해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사실이 괴로워 나도 죽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작은 누나에게 보냈다. 범행 사실을 모르는 작은 누나는 112에 곧바로 신고했고 경찰은 일동면의 한 저수지 근처에서 자살을 기도하려는 이씨를 발견해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처음에는 절대 못한다고 버텼는데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버지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며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포천경찰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12일 밝혔다. 또 이씨의 어머니(55)와 큰 누나(29)는 존속살해 방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통증을 견디지 못한 말기암 환자의 요구로 가족들이 안락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법정에서 또 한 번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강제로 환자의 목숨을 끊는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식물인간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포천=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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