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횡단의 아득한 여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1992년 겨울 40여 일에 걸친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여행 때 얘기다. 통관수속이 지체돼 러시아 변경도시 자바이칼스크에서 하루 반나절을 기다렸다. 가까스로 국경을 넘어 중국 만주리역에 도착했을 땐 겨울 해가 흙먼지 자욱한 대지 위로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이었다. 플랫폼 위로 인민복 차림의 남루한 인파가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 속에서 청바지와 파카 차림의 유럽 청년 서넛이 열차에서 사이클을 내리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 흰 입김을 토해내며 시시덕거리는 풍경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때 우리는 서울 대신 거꾸로 런던까지 자동차를 공수해 출발하는 번거로운 여정을 택해야 했다. 거기서 파리와 베를린, 프라하와 바르샤바를 찍고, 러시아를 관통해 만주리에 이른 터였다. 하지만 그 청년들은 유럽 어디에선가 겨울방학을 맞아 사이클 한 대씩 끌고 가볍게 열차에 올랐을 것이었다. 언젠가 우리 청년들도 사이클 한 대씩 끌고 서울역에서 제대로 출발해 원산 찍고, 하얼빈 거쳐 런던까지 이어지는 대륙횡단열차를 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여행 중 느낌대로 러시아를 세 권역으로 나눠봤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는 유럽이다. 하지만 우랄산맥을 넘어 동진할수록 동양적 색채가 점점 짙어진다. 그러다 바이칼호 동쪽의 중국ㆍ몽골 접경도시인 치타 주변에 이르면 시내 어디에나 '눈 찢어진' 몽골계 인종이 득시글거리는, 왠지 낯익은 고향 같은 분위기가 된다. 일제 때 춘원 이광수 선생의 '러시아 방랑'의 주무대가 치타와 바이칼호였다는 점도 비로소 이해가 됐다.
▲ 북쪽이 트여 대륙으로 향하는 육로가 열리면 오랜 체증이 터지듯 우리의 DNA 속에 깊이 잠든 '대륙 유전자'도 눈을 뜰지 모른다. 만주에서 바이칼호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도 우리의 오랜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고 했다.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횡단철도 사업은 경제성을 초월하는 더 깊은 염원의 문제일지 모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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