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에 사는 루이(74)씨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고 깜짝 놀랐다. 전립선과 방광에서 종양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는 보험사가 소개해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는 "평소 건강해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았는데, 보험에 가입한 뒤 담당 의료진이 검진을 권유했다"며 "보험 가입으로 조기에 병을 발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보험사들은 고객들의 질병 예방과 조기발견에 주력하고 있다. 건강한 고객에게 운동 프로그램을 권하고, 주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도록 하고, 담당 주치의를 배정해 식단도 짜준다. 발병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후보상 성격이 강한 한국 보험업계에서는 낯선 일이다.
수명이 늘어나고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가 증가하면서 의료비 청구가 많아지자 적자를 우려한 보험사들이 내놓은 상생 전략인 셈이다. 그레고리 앨런 시그나 헬스서비스 담당 사장은 "미 정부가 지원하는 메디케어(65세 이상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건강보험제도)는 중병에 걸리면 본인 부담금이 연평균 1,060달러로 상당히 높다"며 "개인들이 민간 보험에 가입해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으면 적은 비용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어 보험사와 환자 모두에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보험사의 95%는 의료업체와 연계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그나 생명보험그룹은 2008년 본격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미국 전역 26개주 66개의 병원 등과 제휴를 맺고 70만명의 고객을 직접 관리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노인 종합건강관리기관인 헬스스프링을 인수하면서 노인부문에서 연매출 70억달러를 기록, 전년(10억달러) 대비 7배나 성장했다. 질병 예방 효과도 크게 늘었다. 시그나 헬스스프링의 장기 가입자 1만2,239명을 대상으로 지난 5년간 조사한 결과 건강관리서비스로 유방암이 26% 예방됐고, 폐렴 20%, 독감 40%, 당뇨 70%가 개선됐다. 린 논메이커 메디케어 상품총괄이사는 "보험 가입자들에게 담당 주치의를 소개하고, 이들이 환자의 상태를 개선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환자에 대한 의료진들의 책임도 강화해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보험사들이 미국과 유사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을 검토했지만 제도적 제약 때문에 답보상태다. 보건복지부는 하반기 지역보건소의 건강증진, 질병예방 기능을 강화하고 관련 시장을 제도화하는 내용의 건강생활서비스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 보건소의 건강검진 및 예방서비스로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에 맡기면 아무래도 경쟁력이 생기고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은 국민건강보험 등 공공의료체계가 갖춰져 있는 만큼 보험사들이 직접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면, 의료 양극화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개인의 의료기록 등을 빌미로 보험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미국은 장애인과 노인, 저소득층 등 일부 계층에 한해서만 공보험이 적용되니깐 민간 보험사들이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민간 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를 맡게 되면 자연스레 서비스 비용이 늘어나고, 결국 소수 부유층만 혜택을 보게 된다"고 밝혔다.
워싱턴=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