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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구텐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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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구텐버그'

입력
2013.09.1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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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년이 무대에 선다. 여기저기 널려있던 소품을 정리하고 피아니스트를 자리에 앉힌 두 남자는 각각 '버드'와 '더그'라 적힌 모자를 쓰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들은 "언젠가 뉴욕 브로드웨이에 올릴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외친다.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실존 인물 요한 구텐버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관객은 브로드웨이에서 귀하게 모셔온 유명 뮤지컬 프로듀서다. "지금부터 뮤지컬 '구텐버그'의 대본 리딩(일종의 워크숍 공연)을 할 테니 집중해 달라"고 말한다. 2인 20역의 극중극 뮤지컬 '구텐버그'의 시작이다.

달랑 두 명인 배우, 그리고 피아노 한 대가 무대를 구성하는 대부분이다. 수십 명의 배우와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대형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게 뭐야"라는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정식 공연이 아니라 대본 리딩을 하는 설정이라 특별한 소품이나 장치도 없다. 망루처럼 높은 곳을 의미하는 사다리, 와인 제조에 쓰는 포도압착기이자 인쇄기이기도 한 괴상한 상자가 그나마 있는 소품들이다.

뮤지컬 속 뮤지컬 '구텐버그'의 등장 물은 20명이 넘는다. 이를 두 명이 감당하기 위해 쓰인 비장의 무기는 모자다. 모자마다 배역의 이름이 쓰여 있다. 버드와 더그는 '구텐버그' '수도사''유대인을 증오하는 꽃 파는 소녀' 등 배역이 적힌 20여 개의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며 전광석화처럼 배역을 오간다. 모자를 바꿀 때마다 목소리를 바꾸고 곧게 폈던 허리를 구부정하게 만들어 성별과 나이를 훌쩍훌쩍 넘는다. 군중 장면을 연기하는 대목에선 십여 개 모자를 겹쳐 쓴 후 하나씩 벗어가며 멀티플레이를 펼친다. 양손에 모자를 올린 채 두 배우가 동시에 여섯 캐릭터를 소화하기도 한다. 심지어 모자들은 배우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역할을 한다. 수도사에게 붙잡혀 탑에 갇힌 구텐버그의 여자 친구 어깨 너머 모자들은 쥐떼가 되고, 바닥에 놓이면 쓰레기가 된다. 모자들은 배우와 소품, 무대장치를 모두 감당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해낸다.

성경을 인쇄해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날을 꿈꾸는 와인 제조상 구텐버그. 그의 인쇄기를 부수어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수도사. 날카롭게 부딪히는 두 세력의 싸움은 진보와 보수로 날을 맞댄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하지만 유쾌한 피아노와 두 배우의 코믹한 일인 다역이 무게를 덜어낸다. 보잘 것 없는 포도압축기에서 인쇄기를 착안한 구텐버그, 브로드웨이 일류 작가를 꿈꾸는 무일푼 청년들. 이들이 함께 부르는 내일을 향한 희망의 노래가 오래 귓전을 맴돈다.

한국 초연인 이 작품은 앤소니 킹ㆍ스콧 브라운 원작의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버드 역에 송용진 장현덕, 더그 역에 정상훈 정원영이 번갈아 출연해 열연을 보이고 있다. 국산 창작 뮤지컬 히트작인 '심야식당'을 연출했던 김동연의 연출로 충무아트홀에서 11월 10일까지 공연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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