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어제 1,672억 원의 미납추징금 자진납부 계획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이 그 동안 압류한 900억 원 상당의 재산권은 포기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가족들이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분담해 마련하기로 했다. 장남 전재국씨는 "추징금 환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가족을 대표해 사죄 드린다"는 내용의 대국민사과문도 발표했다. 지난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끌어왔던 전씨 일가의 은닉재산 환수가 16년 만에 이뤄지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씨 측의 추징금 납부는 검찰수사와 여론에 떠밀린 측면이 크다. 전씨 측은 검찰이 지난 7월 수사에 착수할 때만 해도 "추징금을 내려 해도 돈이 없다"며 완강히 버텼다. 그러나 검찰이 전씨 측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처남 이창석씨를 구속하고 차남 재용씨를 소환하는 등 자녀들에게까지 수사를 확대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음직하다. 여기에다 절친한 사이였고 같은 범죄로 처벌을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을 완납한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이런 배경 외에 20여 년 전 전씨가 측근이나 일가들에게 빼돌린 돈으로 증식된 재산이 1조원 안팎에 이른다는 관측을 감안하면 추징금 납부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지난 16년 간 추징금 납부 지연에 따라 전씨 일가가 누린 경제적 이익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앞으로의 검찰 수사다. 일각에서는 추징금을 모두 납부한 만큼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안될 말이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탈세와 재산 국외 도피 등은 추징금과 별개의 사안으로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 정상을 참작해 전씨 일가에 대한 구속 수사를 재고한다든지 강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드러난 불법, 탈법행위까지 눈감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수사는 추징금 환수뿐 아니라 법의 심판을 통해 사법정의를 세운다는 중요한 의미도 갖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 동안 추징금 환수에 소홀했던 검찰 등 국가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특별집행팀을 꾸리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추징금 환수 시효가 10월에 만료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반발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정치권도 환수 시효를 연장하는 내용의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만드는 등 뒷북을 쳤다. 권력의 불의를 묵인해오다 온 국민이 공분하고 나서자 마지못해 칼을 빼든 검찰의 행태를 또 한 차례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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