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은밀한 몰래카메라(몰카) 동영상을 하루 종일 검색하는 여성들이 있다. 파일 공유(P2P) 사이트에서 성행위 동영상, 나체 사진 등을 찾아내 신고하는 이른바 몰카 추적자 3인방이다. 성폭력 전문 상담원을 꿈꾸고 있는 박윤정(27)씨, 평소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회사원 이은주(26), 변은미(24)씨가 그들이다. 4월 한국여성민우회가 '몰카 추포(追捕)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원, 100일 동안 추적활동을 벌였다.
9일 서울 성산동 민우회 회의실에서 만난 박씨는 "매일 수 십 개씩 올라오는 일반인 몰카 동영상 때문에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화 중에도 노트북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빠른 손놀림으로 연신 '신고하기' 버튼을 눌러댔다. 사이트 관계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3인방의 추적 대상은 본인의 허락 없이 무단 유포된 동영상과 사진들이다. 국내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P2P사이트 5곳을 모니터링한다. "몰카에 찍힌 여성이 내 동생이나 나 자신이 될 있다"는 생각에서다.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삭제를 요청할 근거가 없다.
여성 추적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영상을 일일이 들여다 보는 일이다. 이씨는 "소위 '야동'이라 불리는 상업용 음란물과 동의 없이 유포된 영상을 구분하기 위해 영상을 내려 받아 일일이 시청하는 게 가장 곤욕"이라고 했다. 파일 제목만 '일반인 유출 영상'이지 정작 열어보면 광고까지 나오는 상업용 음란물이 허다하다.
몰카를 잡아냈다고 기쁜 것만도 아니다. 조명이 어둡거나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는 등 한 눈에 봐도 일반인이 찍은 것이 확실하다 싶은 순간, 어떻게 이런 영상을 유포하고 내려받는 데에 전혀 죄의식이 없는 것인지 갑갑하기만 하다. '다른 일반인 꺼는 없나요' '일반인이라 그런지 여자 얼굴이 별로' 같은 댓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분노를 참기 어렵다.
'여친(여자친구)이 동의하고 찍은 것' 같은 제목을 볼 때는 한숨 소리가 더 커진다는 박씨는 "촬영에 합의했다 해도 상대의 동의 없이 유포하는 건 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명백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변씨는 "파일 이름이 여성의 이름이나 직장 등 개인정보로 돼 있는 경우가 많아 더 큰 문제를 낳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추적자 3인방은 100일간 150여개 몰카를 적발해 삭제했다. 하지만 복사와 유포가 쉬운 컴퓨터 파일 특성상 완벽한 삭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유포한 사람이 전 남자친구였다는 이유로, 피해사실이 주변에 더 알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고소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실시한 '성행위 촬영물 유포 협박' 상담 26건 가운데 고소가 진행 중인 사건은 단 2건(7.7%)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 여성은 타인과 관계를 끊고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추적자들은 "몰카 촬영과 유포는 피해자의 '개인적 치부'가 아닌 '사회적 범죄'"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몰카를 클릭하는 수 많은 사람들 역시 또 다른 공범입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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