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9일 조선일보가 제기한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해 정면 돌파에 나서면서 의혹의 진위 및 배경 등을 둘러싸고 갖가지 설(說)만 난무하던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채 총장은 일단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민ㆍ형사 소송을 거론하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공세를 취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결국 칼끝은 조선일보의 배후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사태가 채 총장과 특정 언론의 갈등을 넘어 결국에는 검찰과 국정원 또는 정권의 대립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다.
이날 채 총장의 발언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의혹은 100% 거짓이다'는 걸 공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전자 검사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라면, 사실 여부를 두고 조선일보가 추가 의혹을 제기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검찰에서는 6일 첫 보도는 물론 9일 후속 기사에서도 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Y씨의 직접 증언이 없는 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조선일보가 혼외 아들로 언급한 채모군의 유전자 정보를 가져와 검사를 해보는 것만 남은 것 아니냐"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조선일보에 대한 강경 대처보다는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 중이고, 이 부분에 대해 굳건하고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전혀 없다"는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첫 보도가 나온 지난 6일부터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보도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돼왔다. 의혹 제기 자체를 '검찰을 흔들려는 시도'로 규정하면서도 법적 대응을 자제했던 채 총장이 사흘 만에 강공으로 선회한 것도 이런 견해에 공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이미 보도 배경에 관한 정보를 상당 부분 수집했고, 배후를 밝히기 위한 수사 착수 여부도 적극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상대가 누가 됐던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라는 강경 발언도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타깃은 국정원이다. 첫 보도 때부터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등으로 채 총장과 불편한 관계였던 국정원와 청와대가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게다가 조선일보가 보도한 Y씨와 그 아들의 출국일과 가족관계등록부, 거주지 등이 본인이 아니면 입수하기 힘든 자료라는 것도 국정원 등의 배후설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선에서는 이번 사태를 국정원이 컨트롤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수뇌부의 만류로 공개하지 않았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주요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채 총장의 이날 발언은 검찰을 흔들려는 국정원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불만을 해소해 조직을 다잡는 한편,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정권과 국정원의 외압 시도에 미리 방어막을 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검 관계자는 "의혹이 제기된 시점부터 검찰이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총장도 잘 알고 있다"며 "의혹 확대를 조기에 봉쇄하는 한편, 사정기관으로서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배후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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