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머시기'를 주제로 5일 개막한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주제만큼 모호한 정체성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주최 측은 개막 전부터 "산업화를 통한 디자인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선명한 주제를 제시해 기대감을 모았다. 2005년 시작해 5회째 접어들기까지 뚜렷한 콘셉트가 없었던 이 행사가 이번에야말로 색깔을 찾을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비엔날레는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관객을 맞는 건 대규모 설치미술 작품이다. 디자이너 김백선이 평론가 이어령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작품은 수백 개의 광주리, 키, 부채를 공중에 전시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객에 대한 환영 인사 정도로 이해하고 3층으로 올라가면 일본 건축가 구마 겐코의 거대한 대나무 작품이 보인다. 대나무를 3cm 폭으로 쪼개 휘어 만든 이 작품은 천장까지 닿는 높이와 수십 미터에 이르는 너비로 시선을 압도한다.
주최측이 강조한 상업성 있는 제품은 2층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기계 느낌 물씬 풍기는 매끈한 '상품'보다는 장인이 인생을 쏟아 부어 만든 듯한'작품'들이 더 눈에 띈다. 디자이너 박현우의 '다시 태어난 골판지 소파'는 127장의 박스를 본드로 붙여 덩어리를 만든 뒤 전동 글라인더로 조각하듯 깎아 만든 것이다. 광주∙부산∙대구경북 디자인센터 소속 학생들을 대거 동원해 비중 있게 제시한 재활용 디자인도 조악한 질 때문에 '착한 디자인'이 추세임을 드러내는 데 그쳤다. 빈 술병을 활용한 연필깎이나 라이터로 만든 램프는 대학 졸업작품 수준에 머물러 기업의 구미를 당기기엔 부족해 보였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러나 크기로 승부하는 설치작품들이 디자인과 산업계 간 교류를 활성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설치작품이 다수 등장한 데 대해 그는 공간의 규모를 문제 삼았다. 상업적 용도로 제작된 디자인 제품을 나열하기에는 전시관이 너무 크다는 것. 그는 "넓은 공간을 억지로 채우려다 보니 전시의 밀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전 행사에서 나왔던 지역주의 논란도 이어졌다. 출품작 중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광주 시민 1,000명에게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뒤 그 대답을 1,000개의 수틀에 수놓은 것이다. 무등산, 5ㆍ18 등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은 대답을 수놓아 공중에 매단 작품은 상업성은 물론이고 예술성과도 무관해 보인다. 여기에 "빵 모양도 디자인이다"라며 옥외 전시관에 선보인 '농부의 빵' 출품자가 행사장 바로 옆 레스토랑 사장이라는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광주광역시가 공동주최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예산은 40억원이다. 규모로는 세계적 수준의 디자인 전문 비엔날레이고 국내 대표적인 디자인 행사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위상에 걸맞게 진보적인 디자인 철학을 제시하길 기대하는 건 결코 무리한 바람이 아닐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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