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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9월 10일] 판사들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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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9월 10일] 판사들의 반성

입력
2013.09.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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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칠레의 판사들이 군사 쿠데타 발생 40주년을 맞아 17년간의 군사정권 시절 사법부의 잘못을 사과했다. 전국판사협회가 당시 사법부, 특히 대법원이 기본적 인권 수호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국가 폭력 희생자 보호에 모두 실패한 점이 명확하게 언급되고 인식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법원이 군사정권에 의해 납치·살해된 가족과 친척을 찾아달라는 5천여 건의 신청을 관련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것 등을 반성한 것에서 나왔다. 중도우파 출신의 대통령이 그 한 달 전에 쿠데타 40주년은 반성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피노체트 측근과 그 후손이 속해 있는 보수우파 대표까지도 독재 시절 당의 행동을 사과한 것의 연장이기는 하지만, 판사들의 반성은 의외여서 전 세계에 뉴스로 전해졌다. 특히 판사들이 그런 사과를 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판사 수 천 명이 그런 사과를 할 줄 아는 협회를 만든다는 것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칠레의 그것은 반세기 전쯤에 만들어졌고, 그 험악한 군사정권 시절에도 유지되었다.

얼마 전까지 칠레에서도 판사들은 문제아들이었다. 2년 전 칠레에서 벌어진 1973년의 악명 높은 고문선(船) 사건 재판에서 대부분의 가해자 군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어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 여론의 비난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많은 문제를 빚었다. 물론 구스만과 같은 양심적인 판사가 피노체트를 재판하기 위해 그의 죄상을 철저히 조사한 사례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이었다. 2006년 피노체트가 사망한 탓에 재판은 중도에 끝났지만 경찰, 검찰과 법원이 여전히 피노체트가 장악한 현실에서는 참으로 어렵고도 용기 있는 일이어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배포될 정도였다. 98년의 피노체트 체포도 런던에서 스페인 검사들에 의해서야 가능했다. 그 때 그 검사는 스페인에서 시민전쟁이 벌어졌을 때 스페인의 칠레 대사였던 네루다가 국외 탈출자들을 배에 태웠고, 당시 장관을 지낸 아옌데가 그들을 칠레에 받아들였던 국제 연대의 역사에 대해 감동적으로 말했다. 그 아옌데가 네루다의 양보를 받아 집권하자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네루다와 아옌데는 영원히 죽지 않는 칠레의 두 거인이자 세계의 두 양심이다. 피노체트의 독재가 한창이던 85년, 칠레에 잠입하여 다큐를 찍은 미겔 리틴도 그 참혹한 고문과 암살의 나라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두 사람의 고향을 찍은 감동을 말했다. 그의 수기에서 마르케스가 말하듯이 보르헤스는 사회주의에 대한 방파제로 군사정권을 옹호했고 요사 역시 피노체트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했음에도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군사정권 시절과 너무나도 닮은 미국 유학파 중심의 피노체트 엘리트들이나 그들의 정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만든 칠레는 지금도 여전히 뿌리 깊다. 지금 수 만 명의 칠레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며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시장 중심 교육제도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공립학교의 몰락과 빈부 간 교육격차 확대를 가져왔기에 교육투자와 무상교육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칠레를 보면 그야말로 우리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법부나 판사들만은 다르다. 오래전부터 사법개혁이 논의되어 왔지만 참으로 기괴한 꼴의 변태적인 로스쿨과 국민참여재판을 제외하면 볼 게 아무 것도 없다. 특히 판사들 자신의 개혁이 전혀 없다. 이는 판사들이 사법을 개혁해야 할 참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그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른다. 나치의 판사들이 나치 패망 후의 서독에서 그대로 판사짓을 하다가 수 십 년이 지나 나치 시절의 사법 살인을 비롯한 만행을 반성한 뒤에야 서독의 사법개혁이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의 핵심이 판사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비롯한 결사와 정치참여를 인권의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이었고, 그래야 비로소 인권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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