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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9월 10일] 난민촌과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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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9월 10일] 난민촌과 캠핑장

입력
2013.09.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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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캠핑바람이 거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캠핑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이젠 중요한 레저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캠핑에 마음을 빼앗긴 건 2년 전 미국으로 1년 동안 연수를 가면서다. 모처럼의 기회이니 연휴나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려 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고 돈은 넉넉치 않아 선택한 게 캠핑여행이다. 주립공원 캠핑장이나 사설캠핑장이나 수준은 높았다. 항상 푹신한 잔디 위에 텐트를 쳤고, 공간은 충분히 넓어 이웃 텐트간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일은 없었다. 7일자 본보에 보도된 '캠핑장엔 룰이 없다' 기사 속 한국의 캠핑장과 달리 편의시설도 여유 있었다.

미국에서 캠핑을 하기 전까지 사실 텐트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다. 군 시절을 생략하더라도,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 원정대를 따라간 취재 현장의 텐트는 너무 힘들어 모진 추억만 남아있다. 좁디 좁은 텐트 안은 고소증세와 냉기, 폭풍과 심한 안개를 피하기 위해 머물던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던 텐트가 가족과 캠핑을 떠나자 세상 그 어떤 곳보다 행복한 공간이 된 것이다. 깊숙한 숲 한복판에 들어와 달랑 한 겹의 천 자락만 사이에 두고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텐트. 식구들을 재우고 홀로 밤을 맞을 때 하늘을 찬란히 수놓던 은하수의 물결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행복했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기억이 어찌된 건지 한국의 캠핑장을 찾았을 때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최근 지인의 초청으로 캠핑장을 따라갈 기회가 있었다. 친구는 번듯하게 텐트와 타프를 쳐놓고 반갑게 맞았지만 솔직히 그 곳에서의 하룻밤이 썩 내키지 않았다. 딱 보기에도 캠핑장은 무질서했다. 사이트 구분도 안돼있고, 텐트와 텐트는 서로의 줄이 엉킬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밀집된 텐트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캠핑장 풍경에서 문득 현재 분쟁중인 중동 지역의 허름한 난민촌이 연상됐다.

그럭저럭 저녁을 보내고 몸을 뉘었는데 잠자리가 편치 않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해서다. 내 텐트를 둘러싼 또 다른 텐트들의 압박 때문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남에게 침범 받고 싶지 않은 일정한 물리적 공간이 있다. 그 개인공간을 침탈당한 듯한 불쾌감이다. 하루 자연 속에서 쉬고 싶어 나온 건데 남들의 속닥거림과 내밀한 숨소리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친구는 그래도 이곳이 꽤나 인기 있는 캠핑장이란다. 그저 말문이 막혔다.

쾌적한 캠핑을 위해선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캠핑 사이트라면 차를 대고 텐트를 치는 건 물론, 옆 텐트와 최소 4,5m는 떨어진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캠핑이 발달된 나라의 캠핑장들은 각 사이트마다 피크닉 테이블과 화로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그런 시설이 없으니 가뜩이나 짐에 치이는 대한민국 캠핑족들은 차에 이 모든 장비들을 싣고 다녀야 한다.

물론 국내에도 널찍한 공간과 화로대, 테이블을 갖춘 캠핑장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아주 기본적인 그런 캠핑장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수준의 캠핑장을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많은 돈, 높은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는다.

정부 부처는 뒤늦게 무분별한 캠핑장을 단속하고 관련 법령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보단 쾌적한 캠핑장을 많이 만드는 게 먼저다. 정부나 지자체가 제대로 된 캠핑장을 수십, 수백 개 더 만든다면 지금의 난민촌 같은 사설 캠핑장들도 따라올 것이다.

산림청 등이 나서서 그 동안 잘 가꾼 숲의 일부를 캠핑족에게 개방해주었으면 한다. 산림청 예산을 보면 이미 산림휴양등산 증진, 국립백두대간 테라피단지 조성, 산악박물관 조성 등 산림이용 항목에 수백억이 책정돼 있다. 이를 캠핑장 조성에 돌릴 수 없을까.

우리나라 캠핑 인구의 70% 가량은 가족 캠핑족이다. 그들은 캠핑을 통해 가족이 행복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나라가 행복하려면 가족부터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한 캠핑장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캠핑은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레저다. 정부나 지자체가 캠핑장을 짓는 것은 비용대비 효과가 큰 사업이다.

이성원 국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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