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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훈의 Dr. 논술] 많은 내용 담으려다 오히려 논점 흐려져… 간결·통일성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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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훈의 Dr. 논술] 많은 내용 담으려다 오히려 논점 흐려져… 간결·통일성 잊지 말아야

입력
2013.09.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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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쟁점이 담겨야 한다. 쟁점이 달라지면 단락을 바꿔야 한다. 단락을 구성하는 이유는 해당 단락 내에서의 담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궤변가들 특히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많은 소피스트들의 주된 특징 중의 하나가 하나의 쟁점 안에 여러 개의 담론소재를 겹쳐 두고 이리저리 피해가는 유희를 벌인다는 것이다. 독자나 청자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쟁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임민지 학생의 글은 산만하다. 대강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전달이 된다. 하지만 9개의 단락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논술이라기보다는 중수필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논술 글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 약해졌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많은 정보를 담으려 하지 말고 정확한 글을 쓰려고 해야 한다.

논술문을 쓰고자 한다면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얼개를 짜야 한다. 즉,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짜야 한다. 형식적인 개요와 더불어 실질적인 개요까지 고민해야 한다. 가장 일반적인 접근방법이 '문제제기-핵심주장'이다. 문제제기는 개별사례를 소개한 후 쟁점을 부각하는 방법과 일반론을 언급하며 적절한 사례를 들어 풀어내는 방법이 있다. 임민지 학생의 글은 두 개의 사례를 소개한 후에 문제점을 논하고 있다. 그런 다음 몇 가지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지막에서는 법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직관을 동원하여 전체 글을 선해(善解)하면 크게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독해에 어려움이 있다. 먼저 형식적인 판단을 살펴본다. '사례-사례-사례-문제제기-해결책-해결책-해결책-부연설명-주장'이라는 9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제기-핵심주장'이라는 간결한 구조를 피하고 '문제사례-사례부연-해결책 -주장'이라는 구조를 택했다. 복잡한 구조에서는 연결구조가 탄탄해야 물이 흐르듯 글이 읽혀진다. 조금이라도 흐름이 불편하면 전체 글 독해가 어려워지기에 논술글쓰기에서 권하지 않는 방식이다.

내용적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1 단락은 사례소개이다. 정직한 법적용이 융통성 없는 결과를 유발한 사례를 보여준다. 2단락과 3단락은 사례에 대한 상술이다. 각각 손찌검사례와 13세 소년사례이다. 4단락은 문제제기이다. 잘못된 법의세태를 지적하며 경찰 측에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5단락은 주장을 위한 극단적 사례 제시다. 6단락은 해결책이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촉법소년에 대한 처우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7단락도 해결책이다. 경찰에게도 검찰의 기소유예와 같은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8단락은 부연설명으로 처리에 한계가 있는 부분들은 수정보완하면 피의자도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한다. 9단락은 법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고 재주장한다.

이 글의 핵심주장이 무엇인지가 모호하다. 경찰에게 일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것인지? 아니면 법지상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인지? 법이 잘못되었으니 개정하자는 것인지? 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 마지막 주장에는 법지상주의를 극복하자고 하는데, 글 전체 내용에서는 경찰이 초기에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들어있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글의 구성은 간결해야 한다.

법지상주의란 모든 것을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생각이다. 법지상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은 법으로만 해결하지 말고 법외적인 해결책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으로만 해결하지 않는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당사자의 대화를 이끌어낸다거나 적절한 교육방법을 고민한다거나 형사처벌만이 아닌 다른 처우를 준비하자 등등의 방법론이 언급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촉법소년의 처우문제나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권개입은 모두 법적인 해결방법이다. 즉, 촉법소년에 대한 기준을 낮추는 문제이든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개입의 재량문제거나 모두 관련법규정의 개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글의 핵심주장은 법지상주의가 아닌 관련법규정의 적절한 개정이 필요하다가 되어야 한다.

4단락이 논리구성에서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법의세태가 잘못되었다와 법지상주의, 그리고 경찰 측에서 확실한 처리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은 같은 단락 내에서 논할 사안이 아니다. 다른 층위의 내용을 한 단락 내에서 언급함으로써 전체 글의 논리적 연결성이 무너졌다. 꼼꼼한 개요짜기가 아쉬운 대목이다.

하이퍼 논술학원장ㆍ서강대 법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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