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 양첸하오(24)씨는 우리나라에서 5년째 거주하고 있지만 아직도 서울에서 길 찾기가 익숙지 않다. 얼마 전에는 강남에서 업무상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모바일 지도만 믿었다가 3시간이나 길을 헤매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약속 전날 미리 구글 지도로 위치를 파악했으나, 막상 약속 장소를 10분 거리에 두고 모바일 지도를 확인해보니 복잡한 골목길과 부정확한 지도 때문에 정확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양씨는 몇 시간을 헤맨 끝에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야 했다.
양씨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구글 지도를 볼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는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외국인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평소 여행에서 구글맵 지도를 잘 활용하는 외국인 친구들도 한국에 여행 올 때는 아예 모바일 지도는 포기하고 종이 지도를 준비해서 온다"고 말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IT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선 유독 모바일 지도가 먹통이다. 정부의 엄격한 지도 정보 통제 때문인데,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급성장하는 지도정보서비스 산업발전까지 방해해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의 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모바일 앱은 구글 맵.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지도의 해외 반출을 막는 국내 법규가 그 이유다.
1961년 제정된 '측량·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이하 측량법)에선 국가 안보상 지도의 국외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장관 허가를 받으면 되지만, 지도 데이터를 담은 서버를 해외에 두면 그마저 금지된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서비스업체들은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의 지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안보위험을 근거로 국외 반출을 막는 것은 실효성 없는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국내업체이기 때문에 지도서비스를 할 수 있는데 얼마든지 외국인들이 볼 수 있다. 단지 서버가 해외라는 이유로 막는 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모바일 지도앱 등에 사용되는 지도는 중요 시설의 표기가 제외되기 때문에, 안보상 이유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업계에서는 지도 반출 금지 법규가 모바일 서비스 개발 경쟁을 가로 막는 또 하나의 갈라파고스 규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미국 유럽 등에서는 구글, MS 등이 제공하는 지도 정보(지도API)를 활용해 무인자동차, 구글글래스, 위치기반서비스(LBS),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개발경쟁이 치열하며 2015년에는 관련산업규모가 세계적으로 15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도정보가 부정확해 도입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한 관계자는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중국, 러시아 등도 해외 업체에 지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만 고립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부정확한 지도정보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는 지도의 정확성 때문에 관련 업체들이 네이버 다음 등 포털서비스 지도 정보를 활용하고 있지만,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구글 등의 지도정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등 번거로움과 추가비용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지도관련 개발업체 관계자는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무료로 정보를 개방해주는 구글 지도를 두고 추가로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며 "관련 중소ㆍ벤처 기업들은 앞선 기술이 있어도 해외 진출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도 반출 규제가) 공공정보를 오픈 해서 창조경제를 지원하겠다고 한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측은 외국인을 위한 지도를 준비하고 있으며 올해 말쯤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2만5,000분의 1 소축척 지도는 사실상 길 찾기 등에는 사용할 수 없는 지도"라며 "여전히 모바일 지도 서비스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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