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토목 공사를 발주하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와 수주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겹치면서 매년 1조원 안팎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토지 보상이나 민원이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일선 부처가'예산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공사를 발주하면, 민간 업체가 저가에 수주한 뒤 설계 변경이나 물가 상승을 이유로 사업비를 증액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대규모 재정사업의 효율적 관리방안'에 따르면 2009~11년 3년간 정부가 진행한 도로ㆍ철도부문 총 178조원 규모의 452개 공사를 점검한 결과, 최초 발주 후 다양한 사정 변경을 이유로 건설 업체가 추가로 챙긴 공사비가 2조8,29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주처인 정부 부처가 공사 원가를 부풀리려는 건설 업체의 잔꾀를 묵인하면서 연 평균 1조원 안팎의 정부 예산이 추가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비 증액은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대규모로 이뤄졌다. 지역 정치인과 토착 건설업체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단순한 소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총 69개가 진행된 '지방도' 사업은 최초 총 7조원이던 사업비가 11조3,000억원으로 불어나 증액률이 50.3%에 달했고, 산업단지 일반도로 사업비도 3년간 36%나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고속도로 사업의 해당 비율(15%)보다 2~3배 이상 높은 것이다.
기획재정부 연구 용역으로 분석 작업을 진행한 KDI는 공무원들이 땅 주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수용토지에 과다 보상을 해주는 것도 착공 후 사업비 부담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했다. KDI는 "수용 토지의 가치를 땅 주인이 지정한 감정기관 대신 제3의 객관적 기관이 평가하도록 제도를 바꾸면, 연간 최대 1조원의 보상액 절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DI는 "용지 보상이 80% 이상 이뤄진 뒤에 발주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사업비를 부풀리기 위한 건설 업체의 꼼수(설계변경)를 감시할 전문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완공 후 최종 사업비가 최초 사업비보다 적거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경우 일정 규모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예산 절감 방안으로 제시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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